건강한 삶, 행복한 삶은 당신 가까이에 있다

2017 WINTER

피 플

염유식 |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건강한 삶, 행복한 삶
당신 가까이에 있다

「친구 많을수록 골다공증 위험 높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신문에서 읽은 이 말은 단번에 나의 호기심을 사로잡았다. 관련 신문기사를 더 찾아보았다.
「말 상대가 많은 할아버지 고혈압 덜 걸린다」
「친구 많을수록 치매에 덜 걸려」
 
이 기사는 2011년부터 6년 째 사회연결망에 따른 건강관련 연구를 수행한 결과이다. 연세대학교 염유식 교수는 이러한 연구 결과를 네이처의 자매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했다. 강화도 두개 면의 전체 고령자와 그 배우자를 대상으로 삼아 사회연결망을 조사하고 그들의 건강상태와 뇌의 기능성 자기공명 영상을 촬영하였다고 한다. 신문에 짧게 요약된 정보들로는 아쉬움이 있어 직접 찾아뵙고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었다.
연세대학교 연구실에 들어서자 염유식 교수의 초상화 두 개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제자 분들이 그려준 것이라고 한다. 사진 기자와 나는 너무 젊게 보이신다고 한마디 하자 “사실 나이 많아요.” 연말이라 연구 마감에 바쁘신 듯 조금은 초췌한 얼굴로 우리를 맞으시며 젊어 보인다는 말에 쑥스러운 듯 한마디 던지셨다. 연구실 한편에 키보드 건반 상자가 놓여 있어 음악도 하시느냐고 물으니 군대에 간 아들이 두고 간 것이라 했다. 아 그 정도 나이시구나.

염유식 교수와의 인터뷰

'코호트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는 연구인가요.

넓은 의미로는 사회과학에서의 패널자료 연구와 동일하지만, 의료 쪽에서는 특히, 비슷한 나이 대의 사람들을 패널의 형태로 전향추적조사하여 질병의 원인 등을 밝히는 연구를 지칭합니다.

지금 어떤 연구를 하고 계시는지요.

주로 노인들의 건강에 대해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사회학적 친구 관계에 대한 연구(KSHAP - Korean Social Life, Health, and Aging Project), 도시와 농촌 비교 연구(KURE - Korean Urban Rural Elderly), 대사 심혈관 질환에 관한 연구(CMERC - Cardiovascular and Metabolic Diseases Etiology Research Center) 등 입니다. 세 가지 연구 모두 가능한 자세하게 고령자들의 사회연결망을 설문의 형태로 수집하고 있습니다. 고령자들이 중요한 이야기를 상의하는 (배우자를 포함한) 지인에 대한 인구통계학적 사항을 자세하게 7명까지 묻고, 이 지인들과의 관계정도도 측정합니다. 특히, KSHAP은 강화도 두 면의 모든 고령자들과 그 배우자들의 전수 조사를 하여 두 마을의 전체 사회연결망을 패널 형태로 측정하고 있습니다. 한 마을은 현재까지 4번 조사하였고 다른 마을은 2017년 1월에 첫 조사. 앞으로 4년간 두 마을 모두 한 차례 더 조사 예정입니다. 또한 채혈을 포함한 건강검진을 통하여 질병과 건강에서 사회적과정과 생의학적 과정이 분리될 수 없음을 밝히고자 합니다.

강화도를 연구 대상으로 삼은 이유가 있는지요.

사회 연결망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인구 이동이 많은 도시 보다는 농촌 지역이 적합합니다. 또한 한 마을의 전체 연결망을 수집할 수 있어 전체적인 사회의 모습을 측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강화도가 서울에서 거리상 멀지 않아서 그곳으로 정했습니다.

연구 주제가 모두 건강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원래 전공은 사회연결망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회연결망 전공자들이 경제사회학에 관심을 가지는데, 저는 미국에서 공부할 때 첫 연구를 성병과 유방암에 관한 연구로 시작했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건강이 제 주된 관심사가 되었어요.

이런 코호트 연구의 어려움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요.

가장 어려운 점은 추적조사이다보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연락이 닿지 않는 고령자들이 늘어나게 된다는 점입니다. 최초의 인원을 가능하면 그대로 유지하여 높은 유지율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힘듭니다.

신문에 실린 연구 결과를 보니 사회적 관계와 건강이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한 마을의 친구 관계망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고령자들은 뇌 건강이 좋다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또한 혼자 사는 할머니들도 양호하게 나타났습니다. 이는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적은 경우로 여겨집니다. 재미있는 것은 아들은 둔 노부부와 딸을 둔 노부부에서 차이가 나타났는데, 아들을 둔 경우 할머니의 우울증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아들을 돌보아야하는 경우로 해석됩니다. 반면에 딸을 둔 경우에는 할머니는 차이가 없는데 할아버지의 우울증이 낮게 나타났습니다. 딸이 할아버지를 돌보아주는 관계로 해석됩니다. 즉 아들은 둔 경우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아들 두 명을 보살펴야하므로 스트레스가 높고, 딸을 둔 경우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딸로 부터 모두 보살핌을 받으니 스트레스가 낮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딸이 있어야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 된 것이네요. 저는 아들 두 명인데 고민이 좀 되는 데요. 마을 관계망에는 특이할만한 사항이 있는지와 도시와 농촌의 차이는 있는지 궁금하네요.

아래 그림에서 보면 위쪽 가운데에 있는 작은 집단(초록색)의 건강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한 마을에서 집단적으로 격리된 지역이라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시와 농촌에 대한 연구는 아직 진행 중입니다. 데이터를 모으고 있는 중이라 2년쯤 뒤에 결과가 나올 것 같습니다.

이 그림은 한 마을(면)의 전체 연결망을 표시한 것이다. 원은 개별 고령자를 나타내며, 원끼리 서로 선으로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은 서로 친구나 지인관계임을 보여준다. 원의 색깔은 서로 다른 리(里)를 표시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를 앞두고 있습니다. 은퇴해서 잘살려면 지금 아내한테 잘 해야 한다고 우스개처럼 얘기하는데요. 그런 연구 결과도 있는지요.

아직 우리나라는 연구 중이지만 미국에서 연구된 결과는 나와 있습니다. 몸의 만성 염증 정도를 재는 CRP(C-Reactive Protein)라는 것이 있는데요. 이것이 높을수록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남자는 아내와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몸의 염증 정도가 낮았고, 여자는 시간보다는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거나 상대방에게 비난을 덜 받을수록 염증 정도가 낮았습니다. 즉 남자는 부부관계에서 양이 중요하고 여자는 관계의 질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남자들이 행복하려면 아내한테 잘하고 딸을 두어야한다는 결론이네요. 전 두 부분에 다 못하고 있으니 걱정이 많이 되는데요. 요즘 1인 가구가 많아지는데요. 이런 현상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연구결과 1인 가구가 더 건강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해 많은 친구들을 유지하면서 외부에서 오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물론 빈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1인 가구는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1인 가구(living alone)와 친구 없이 혼자 살아가는 것(being alone)은 매우 다릅니다. 후자는 매우 위험하지만 전자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교수님의 연구를 통해 사회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고령자 건강에서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치매입니다. 현재는 치매에 대해서 예방이 아니라 일단 질병에 걸린 후에 이루어지는 치료에 중점을 둔 정책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런 연구를 통해 치료에 앞서 예방 활동이 가능해지지 않을까요. 현재 치매에 대해 얘기하는 예방이 손가락 운동이나 고스톱을 장려하는 수준입니다. 인간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도의 인지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복잡한 사회 활동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충분히 치매를 예방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예를 들어 건강을 위해 금주하면서 혼자 헬스장에 가는 것 보다는 차라리 사람들과 어울려서 운동을 하고, 끝나면 적당한 음주도 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훨씬 더 건강한 삶을 가져올 것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현대인은 몸무게에 대해서 너무 민감합니다. 의학적으로는 비만보다 아래 단계인 과체중은 경우에 따라, 건강에 아무런 영향을 안 미치거나 도리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들도 있습니다. 또한 많은 분들이 몸무게를 걱정하며 보통 안 먹거나 특정 음식만을 먹어서 살을 빼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영양학적으로는 다양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건강을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다양한 음식을 먹고 다채로운 육체적·사회적 활동을 하는 것을 권장하는 이유입니다.

교수님 말씀을 듣다보니 요즘 우리나라에 헬조선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요. 행복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우리나라는 너무 목적 지향적인 면이 많습니다. 좋은 대학가야 되고, 강남에 집이 있어야하고, 좋은 직장이 있어야만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얻기까지 지금은 참아야하죠. 하지만 그렇게 불행한 시절을 겪고 좋은 대학에 가면 행복할까요? 저는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행복은 어떠한 조건을 만족하는 순간 소유하게 되는 무엇이 아니라, 그러한 조건을 만족하기 위해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는 과정이라고 믿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불행하게 사는 법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가 서울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월수입이 400만원까지는 행복도가 소득에 비례해서 증가합니다. 하지만 400만 원 이상의 수입은 더 이상 행복 정도를 늘려주지 않습니다. 400만 원 정도 수입이 되면 더 벌려고 발버둥 치기보다는 주변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세요. 아이들에게 경쟁해서 사회적으로 더 좋은 위치를 얻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까운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제가 10년째하고 있는 우리나라 어린이 청소년 연구에 의하면, 엄마가 자녀들의 친구나 선생님, 주변인물을 많이 아는 자녀들일수록 더 행복했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자신의 고민이나 생각을 엄마와 많이 공유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나라 아버지들은 일에 쫓겨 사는 경우가 많은데요. 아버지를 위해서도 한 말씀 해주시죠.

아버지가 같이 아이들과 게임해주는 집은 아이들이 게임 중독에 걸릴 확률이 크게 줄어듭니다. 아이들이 게임을 얼마나 오래하는 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들이 없는 시간이라도 쪼개어 자녀들과 게임이라도 함께 해주시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고령사회에 접어들고 있어 사회적으로 이슈가 많이 되고 있는데요. 여기에 대해서 교수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저도 고령사회에 대해서 어떻게 가야한다고 말하기가 힘든 면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류가 지금처럼 오래 산적이 없어요. 처음으로 접하는 그런 새로운 유형의 시대라는 거죠. 따라서 저는 고령화 사회라고 하면, 생산력 감소, 고독사와 같이 자동적으로 연상되는 여러 사회적 문제를 그대로 인정하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유형의 사회는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야겠지요. 기존의 프레임으로 보면 문제투성이지만 이제 새로운 프레임으로 사회를 보기 시작할 때라 여겨집니다.

우리나라 사회 복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젊을 때는 경제적 빈곤을 이겨낼 수 있지만 고령자들은 경제적 문제가 심각할 수 있습니다. 경제활동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 사례에서 성공한 복지는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첫째 유럽형으로 높은 세금, 높은 복지입니다. 두 번째는 일본처럼 평생직장이 보장 되는 사회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적합한 복지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세금을 더 걷어 복지를 강화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더 걷어 들이는 세금이 투명하게 잘 쓰인다면 국민이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요. 자신들도 나중에 혜택을 보는데 말이죠. 주변 사람이 행복해야 자신도 행복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불행한 사회는 아픈 사회입니다.

끝으로 앞으로의 연구 계획은 어떠신지요

앞에서 말씀드린 KSHAP 연구는 한국연구재 단의 6년간의 지원 결과입니다. 앞으로 4년간은 지금과 같은 연구를 유지하고, 그 후에는 big data나 wearable device 등의 측정을 본격적으로 도입하여, 건강과 질병의 연구에서 사회과학의 위치를 재정립하고자 합니다.

염유식 교수가 걸어온 길..
· 현재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정교수
· 2000. The University of Chicago. 사회학 박사
· 2000~2005. The University of Illinois at Chicago. 사회학과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