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WINTER
최용준 | 인간개발연구원 교육팀장
내가 그녀를 만난 건 2월 중순 어느 날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는 주말마다 다른 약속이 있다고 말했다.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하던 그 무렵, 직장마저 서로 가까웠던 그녀와 잠깐의 외근에도 커피 한 잔씩 하곤 했는데 주말만 되면 그녀는 사라졌다. 그녀는 스노보드를 탔다.
어린 시절 서태지와 아이들의 ‘필승’ 뮤직비디오에서 본 스노보드는 충격적이라 표현할 만큼 멋있었다. 언젠가는 스노보드를 타봐야겠다는 막연한 결심을 했다. 한 때는 비용이 많이 들 것이라는 핑계로 미뤄오던 스노보드를, 그녀와 함께하고 싶다는 이유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지금도 롤러스케이트를 타지 못한다. 발밑이 고정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 무섭다. 과연 내가 스노보드를 탈 수 있을까하는 걱정과 함께 겨울은 다가오고 있었다.
결국 참다못한 그녀의 후배가 한 시즌동안 무상으로 대여해주기로 하며 스노보드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10년 넘게 스노보드를 탄 그녀는 한 명의 유격 조교를 붙여주었다. 그 유격 조교에게 처음으로 받은 조언은 바로 장비에 대한 부분이었다.
스노보딩에 필요한 장비는 렌탈이 가능하지만 스노보드를 제대로 즐기고자 한다면 본인의 장비를 구입하는 것이 좋다. 렌탈의 경우 매번 다른 장비와 다른 세팅으로 접하게 되어 실력 향상에 방해가 된다.
장비 구입 시 상급자용 장비에 욕심은 부리지 말고 조작성이 수월한 입문자용 장비로 구입하는 것이 좋다. 스노보드 매장의 입문자용 기획전은 피하고 지인의 도움을 구하거나 “헝그리보더”나 “ATS 카페”와 같은 스노보드 커뮤니티에서 조언을 구하는 것이 좋다.
막상 스노보드를 타기로 마음을 먹으니 상당히 바빠졌다. 그녀에게 바로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뮤직비디어 ‘필승’에 나오는 장면처럼 멋진 점프를 보여주고자 스노보드 관련 커뮤니티들을 드나들며 정보를 수집했고, 김현식 프로와 박정환 프로의 강습영상을 대사마저 외울 정도로 수없이 반복해서 봤다. 어느새 나는 머리로서는 완벽한 프로의 기술을 구사하는 수준에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스노보딩의 기초습득은 독학보다는 리조트에서 제공하는 기초강습을 추천한다. 장비의 올바른 착용법과 최초의 턴을 성공하기까지의 절차를 단계별로 배울 수 있다. 기초 강습을 받은 후 강습영상과 더불어 많은 정보를 접하는 것이 좋다.
유튜브나 비메오에는 수많은 강습영상이 있고 스노보딩에 관한 정보가 넘쳐난다. 단편적인 지식이나 짧은 팁 위주의 강좌보다는 체계적으로 구성된 내용을 통해 정보를 얻는 것이 좋다. 또한 최근 유행에 편중된 정보만 접하여 정보를 편식하기보다는 최근 5년 간의 자료를 두루 살펴보는 것이 좋다. 추천하는 검색 키워드는 “김현식”, “박정환”, “아이자와 모리오”이다.
내 인생의 첫 스키장에는 비가 내렸다. 슬로프는 상상 속의 흰 눈이 아닌 녹아버린 빙수와 같았다. 머리속에서는 나는 카빙턴과 알리를 하고 있었지만 바인딩을 체결 후 일어설 수조차 없었다.
그녀가 보는 앞에서 초급 슬로프의 삼분의 이를 엉덩이로 내려왔다. 슬로프의 반을 넘게 내려와서야 겨우 일어설 수 있었다. 한번 그렇게 내려오자 몸은 거의 녹초가 다되었다. 도저히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옆에는 유격조교가 붙어서 하루가 저물도록 나를 끌고 다녔다. 그렇게 하루가 끝나갈 무렵 마침내 턴을 한번 성공하였고 나를 보던 그녀는 물개박수를 쳤다.
어떤 장비보다도 편안함이 우선되는 것이부츠이다. 부츠는 묶는 법에 따라 운동화처럼 끈으로 되어 있는 끈부츠, 다이얼을 돌리면 조여지는 보아부츠, 양쪽의 끈에 달린 손잡이를 당겨서 조이는 퀵레이스 부츠가 있다. 끈부츠는 한번 묶으면 느슨해지지 않는 장점이 있으나 부츠를 착용하는데 많은 힘이 들어가니 보아부츠나 퀵레이스 부츠를 추천한다. 이 두가지 부츠는 느슨해질 때 한 번 더 조여주면 되는데 조이는 방법이 매우 수월하다.
제품에 따라 단단한 정도가 매우 차이가 나는데 소프트한 부츠는 착용감이 좋고 발목사용에 용이하고 하드한 부츠는 강한 프레스를 주는데 용이한 장점이 있다. 입문 시에는 너무 단단한 부츠는 피하도록 한다.
턴을 한번 성공하자 ‘필승’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스노보더가 부럽지 않았다. 턴을 성공한 쾌감은 처음 자전거를 탔을 때, 처음 당구에서 쓰리쿠션을 성공했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그렇게 스노보드에 빠져 들었다.
최초 내 데크는 정캠버에 151cm인 데크였다. 데크는 중간 부분의 형태에 따라 구분할 수 있는데 데크의 중앙이 위를 향한 아치형의 정캠버와 아래를 향한 역캠버, 중앙 부분이 평평한 제로캠버(플랫 캠버)와 여러개의 아치가 합쳐진 하이브리드 캠버가 있다.
정캠버인 데크는 데크 자체의 탄성을 활용하기 좋고 데크의 가장자리(엣지)를 활용하기 좋아 라이딩에 적합하다. 역캠버인 데크는 역엣지(보드의 진행방향과 엣지의 방향이 일치하지 않을 때 설면에 걸려 넘어지는 현상)의 위험을 줄일 수 있지만 엣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에는 제약이 있어 지빙이나 트릭에 적합하다. 데크의 중심부가 평평한 제로캠버는 정캠버와 역캠버의 중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미지 출처 : 라이더스파크
적절한 데크의 길이는 신장과 체중을 고려해서 결정하는데 입문 시에는 본인의 신장에서 15~20cm정도 짧은 데크를 결정하는 것이 좋다. 내 키는 175cm이다보니 다소 짧은 데크를 타게 되었는데 의외로 이 조건이 나에겐 큰 도움이 되었다. 짧은 데크는 조작성이 좋아 기초를 배우기에 용이했고 역캠버 데크로 배웠을 경우에 비해 더 많이 넘어지고 역엣지도 경험했지만 정캠버 데크운용을 통해 기초 확립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스노보딩을 할 때 왼발을 앞으로 세팅을 하면 레귤러스탠스, 오른발을 앞으로 세팅하면 구피스탠스라고 한다. 주로 오른발잡이는 레귤러스탠스, 왼발잡이는 구피스탠스로 스노보딩을 한다.
보통 스노보드를 시작할 때 바인딩은 앞발을 15°, 뒷발을 0°로 두고 시작하라고 한다. 그 이유가 궁금했지만 모두들 하나 같이 처음엔 그렇게 하는 거라고만 했다. 자세가 불편하여 각도를 바꾸려 하다 혼만 났다. 혼이 난 이유는 “초보는 15°, 0°로 타야하기 때문”이란다.
바인딩을 연결할 때 바인딩의 각도가 둘 다 진행방향으로 돌아가 있으면 프론트 스탠스(포워드 스탠스), 뒷발을 진행방향의 반대방향으로 세팅하면 덕스탠스라고 한다.
프론트스탠스는 상체가 진행방향 쪽을 보게 되어 시야확보에 유리하고 덕스탠스는 데크의 앞뒤를 바꿔 라이딩하는 스위치라이딩에 유리하며 보통 사람이 서 있을 때 양발이 좌우로 벌어지는 것과 같이 세팅하여 중심잡기에 유리하다.
요즘은 프론트스탠스가 유행하고 있지만 굳이 유행에 따르려고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입문이라고 해서 무조건 15°. 0°로 시작할 필요도 없다. 본인이 편안한 각도에서 시작하면 된다. 다만 어느 정도의 편안한 각도를 찾았다면 계속해서 바꾸려하지 말고 그 각도를 한 시즌 동안 유지하며 기초를 연습하는 것이 좋다.
나는 유격조교가 무서워 몰래 이리저리 각도를 바꿔가면서 이리저리 테스트를 해보았다. 첫 시즌 21°, -6°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데크는 캠버 이외에도 플렉스FLEX라는 고유의 특성을 가진다. 플렉스는 데크가 휘어짐에 대해 단단한 정도를 의미하는데 소프트할수록 조작성이 좋고 단단할수록 안정감이 높아진다. 입문 시에는 다소 소프트하거나 중간정도의 단단한 데크를 추천한다.
바인딩은 최초 구입 시부터 높은 등급의 제품을 선택해도 무방하다. 특히 데크와 바인딩은 제품의 상태를 판별해줄 지인이 있다면 중고거래도 좋은 방법이다.
설면 위에서의 스노보딩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처음 슬로프에서 미끄러져 내려갈 때 남들이 보기엔 걷는 속도보다도 느린 속도지만 내가 느끼는 속도감은 어마어마하다. 또한 몸의 축이 중력 방향이 아닌 슬로프 경사에 대해 수직이 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맘처럼 쉽지가 않았다.
실력에 맞지 않게 속도를 내는 것은 위험하지만 스노보딩 자체는 어느 정도 속도가 나와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속도감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우선 멈추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완만한 경사에서 직활강을 하다 데크를 돌려 멈추는 연습을 한다. 또 평지를 이동할 때에는 한쪽 발만 체결하고 묶지 않은 발로 설면을 차서 이동하는 스케이팅을 하여 설면에서 미끄러지는데 익숙해져보자.
그리고 안전하게 넘어지는 연습도 필요하다. 넘어질 때에는 절대 손으로 설면을 짚지 않는다. 보호대를 믿고 엉덩이로 넘어져야 큰 부상을 피할 수 있다. 브레이킹 요령과 안전하게 넘어지는 요령을 익히면 보다 빠른 속도에서도 불안함을 극복할 수 있다.
스노보드를 경험한 첫 시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조바심이었다. 그녀는 항상 초보슬로프에서 나를 지켜보다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 주었다. 고마웠지만 한편으론 맘에 부담이 되었다. 빨리 잘 타고 싶었다. 그래서 욕심을 부렸다. 한 번은 지친 상태에서 ‘한 번 더’를 반복하며 타던 중 다리에 힘이 빠져 중심을 잃고 돌진해오는 초보 보더를 피하지 못하고 충돌했었다. 정말이지 헬멧을 착용하지 않았더라면 큰일 날 뻔 한적이 있었다. 또 한 번은 무리해서 턴을 하던 중 스키어와 충돌했다. 슬로프에서 욕심은 절대 금물이며 항시 사고에 대비하여 패트롤을 호출할 수 있는 연락처를 숙지하는 것이 좋다. 또한 상의 주머니에는 어떤 물건도 넣지 않는 것이 좋다. 왼쪽 가슴 앞의 주머니에 차키를 넣어두고 앞으로 넘어져 갈비뼈가 골절되는 사고는 비일비재하다.
1. 자주 가는 스키장의 패트롤 호출 번호를 미리 알아둔다.
2. 부상 시 주위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고 패트롤을 호출한다.
3. 움직일 수 있다면 슬로프의 가장자리로 가서 장비를 풀어 슬로프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지 않도록 하고 패트롤의 도움을 기다린다.
4. 충돌 사고 발생시 목격자를 확보한다.
5. 부상여부를 우선적으로 파악하고 이후 장비의 손상여부도 확인한다.
6. 큰 사고 발생시 스키장의 CCTV 영상을 확보한다.
스노보드 동호회 카페에가 보면 많이 올라오는 글이 사고에 관한 것이다. 그 글들을 읽을 때마다 정말 멋보다도 안전이 우선이라는 것을 느끼고 느낀다.
1. 보호대, 헬맷 등 안전 장비는 꼭 챙긴다.
2. 실력에 맞는 슬로프만 간다.
3. 슬로프 중간에 멈춰있지 않는다. 휴식이 필요할 경우 슬로프의 끝으로 이동한 후 휴식한다.
4. 항상 사방을 주시하고, 사람들이 몰린 곳으로 가지 않는다.
5. 위험 감지 시 큰 소리로 주위 사람에게 알린다.
6. 넘어질 때 손으로 짚지 않는다.
7. 슬로프에서 데크를 풀어두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데크를 풀어야 할 상황이 되면 하이백을 세워 데크를 뒤집어두어 슬로프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지 않도록 한다. 주인을 잃고 슬로프 아래로 미끌어져 내려간 데크는 큰 사고를 유발하는 흉기가 된다.
8. 음주 후 스노보드를 타지 않는다.
9. 슬로프 위에서는 절대 욕심 부리지 않는다.
스노보드를 접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며 기초 연습 중인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보기 좋다는 생각이 든다. 입문 시 내가 초보임을, 그리고 기초연습 중임을 부끄러워했던 생각이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이었는지를 문득 깨닫게 된다. 슬로프 위에서 스노보드를 타는 자체가 즐거움이다. 아무리 추위를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첫 턴을 성공하면 단언컨대 겨울만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나는 이제 그녀와 속도를 맞추면서 슬로프를 내려온다. 때로는 그녀의 자세를 보며 잔소리도 한다. 그녀와 나는 평생 스노보드를 같이 타자고 약속을 했다. 내년 봄에 그녀와 나는 결혼을 한다. 봄에 결혼식을 하는 이유라면 겨울 중 주말에는 스노보드를 타야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녀가 그랬고 이제는 둘이 함께.
1. 리프트 하차 시 신속하게 하차장을 벗어나야 하며 넘어질 경우 당황하지 말고 신속하게 일어나 이동하도록 한다. 리프트는 안전요원이 멈춰준다.
2. 슬로프 시작점에서 일행과 횡대로 펼쳐 앉아 바인딩 체결하지 않는다.
3. 리프트 슬로프에선 절대 금연이다.
4. 슬로프 중간에 멈추지 않는다. 슬로프 중앙에서 셀카를 찍지 않으며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 멈춰 서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