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WINTER
유태준 | 마인즈랩 대표
인공지능(AI)은 어느덧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발 빠르게 AI를 도입한 금융권을 비롯해 산업 전반은 물론 공공 부문에서도 AI 기반의 서비스·솔루션 마련에 한창이다. AI 열풍 속에 일반인들의 인식 수준도 껑충 뛰었다. AI가 SF 영화에나 등장하는 로봇처럼 막연하게만 다루어졌던 이전과 달리, 이제는 대기업들이 연이어 출시하는 스피커 형태의 AI 기기, 각종 음성인식 및 챗봇 등으로 그 형태와 목적이 구체화되고 사용자의 일상에도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까지 시중에 공개된 AI 서비스의 수준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하지만 클라우스 슈바프 다보스 포럼 회장이 지적했듯 우리가 살아왔고 일하던 방식을 AI가 근본적으로 뒤흔들 것이라는 데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인간의 개입이 최소화되거나 혹은 전혀 없더라도 빠르고 정확한 의사 결정과 실행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 엄청난 규모와 복잡성을 지닌 영역의 핵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AI 플랫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인공지능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는 여러 기술 요소를 한 곳에 통합한 뒤 이를 다양하게 조합하여 각 산업 영역에 적용할 수 있도록 구성된 것이 AI 플랫폼이다.
사람의 음성을 인식해 텍스트로 변환하거나(STT, Speech to Text) 텍스트를 다시 음성으로 변환하는 기술(TTS, Text to Speech), 언어를 이해하는 기술(NLU, Natural Language Understanding), 질의응답과 대화를 처리하는 기술 등이 대표적인 인공지능 기술 요소로, 이러한 기술 요소를 AI 엔진이라고 부른다. 이 AI 엔진들을 토대로 어떻게 모듈을 구성하느냐에 따라 AI 스피커, 챗봇, AI 가상 비서 등의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AI 서비스 도입을 고민하는 대다수 기업과 기관들이 마주하는 문제점을 이해해야 한다. 대부분의 AI 서비스는 말 그대로 ‘예전에는 없었던 것’들이다. 챗봇이든, AI 스피커든, 가상 상담 서비스든 이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자체가 기술적으로 만만치 않다. 이처럼 자체적으로 AI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은 데다, 한 가지 AI 서비스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보니 여러 개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것도 문제다. 수많은 종류의 AI 서비스에 맞게 그때그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시간이나 비용 면에서 상당히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또 AI는 계속해서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는 영역인 만큼 최신 기술과 알고리즘을 어떻게 반영하느냐도 큰 숙제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최신 AI 알고리즘이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신 기술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데도 이를 반영하지 못하면 결국 AI 서비스의 품질이 저하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하지만 개별 시스템마다 매번 최신 기술을 이해하고, 다시 이를 시스템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인적·물적 자원이 필요하다. 결국 AI 플랫폼은 가장 효율적으로, 가장 빠르게, 가장 최신의 AI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인 셈이다.
이러한 이유로 AI 플랫폼은 전 세계 AI 기업들이 가장 집중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하나의 플랫폼에서 확장되는 수많은 서비스’라는 목적 아래, 개별적인 AI 애플리케이션보다는 AI 서비스를 총체적으로 제공하는 AI 플랫폼 개발에 힘쓴다.
IBM의 AI 플랫폼 왓슨(Watson)이 대표적으로, 어느 산업 분야에서든 그에 맞는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아마존의 알렉사(Alexa) 역시 가정용 AI 기기인 에코에 탑재되며 고객들에게는 쇼핑의 편의를 더하고 기업에게는 세일즈와 마케팅, 유통, 콘텐츠 네트워크를 위한 다각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전 세계 어느 산업에서나 다각적인 AI 서비스가 어떤 채널과 기기에서나 연속적으로 제공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는 AI 플랫폼의 기술적 완성도에 달려있다.
아마존의 가정용 인공지능 서비스 플랫폼, 알렉사(Alexa)
AI 플랫폼을 활용할 수 있는 영역은 무궁무진하지만, 기업·기관에 적용되는 사례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단순 업무 지원(Smart Advisor)으로, 일종의 내부 직원용 서비스라고 이해하면 간편하다. 고객과 직원의 대화 중 주요 주제나 키워드를 인식해 AI가 최적의 답안을 추천해주면, 직원이 고객에게 직접 답변한다. 두 번째로 상담 업무 자동화(Virtual Agent)는 고객을 대상으로 24시간 내내 상담 서비스를 지원한다. 챗봇이 대표적으로, 실제 사람과 대화하듯 음성 대화나 채팅을 통해 상담 등 대화 기반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업무 처리 자동화(AI Automation)는 사람이 수작업으로 진행하던 작업 일체를 AI를 활용해 말 그대로 자동화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챗봇에 대한 공공기관의 관심도 높다. 대구광역시는 공공기관 최초의 AI 플랫폼 기반 민원 자동상담 시스템인 ‘뚜봇’ 구축에 나섰다. 뚜봇은 여권, 차량 등록, 시정 안내 등의 분야에서 민원인의 답변에 24시간 답하는 챗봇이다. 꼭 채팅의 형태를 띤 챗봇이 아니고서도 언어를 이해하고 대화를 처리하는 AI 제반 기술을 활용하면 다양한 형태의 AI 기반 대고객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텍스트뱅킹은 계좌 이체·조회 등 간단한 금융 거래와 환율 조회·상품 추천 등의 금융 정보 제공이 앱 설치 없이 SMS 발송만으로 가능한 서비스다.
현재 ‘엄마한테 10만원 보내’, ‘오늘 엔화 환율 얼마야?’와 같은 말을 즉시 이해하고 해당 명령을 실행하거나 답변할 수 있는 수준에 와 있다. 보험사나 카드사처럼 텔레마케팅이 활발한 분야나 콜센터에 접수된 민감한 민원을 즉시 처리해야 하는 제조사 등에서는 AI를 도입해 업무 처리를 자동화하고자하는 수요가 높다. 상담원이 표준 스크립트를 준수했는지, 고객의 요청 사항을 적절하게 처리했는지 등에 대한 검수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AI가 없던 때에는 이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일일이 녹취 파일을 2배속으로 청취하며 진행했다. 하지만 음성 인식과 텍스트 분석 기술 등 AI 기술을 기반으로 한 AI 플랫폼을 도입할 경우 해당 과정을 자동화하고 시각화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업무의 효율과 검수 작업의 정확도가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AI 플랫폼은 이제 기술적으로 새로운 국면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정보를 얻기 위한 사용자의 행동 양식에 근본적으로 변화를 줄 수 있도록, MRC(기계 독해, Machine Reading Comprehension)라는 최신 알고리즘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MRC란 인공지능이 텍스트를 독해하고 사람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전에는 정보를 얻기 위해 검색을 한 뒤 검색 포털이 제공하는 수많은 정보 중 연관성이 높아 보이는 것을 사용자가 직접 취사선택해야 했다면, MRC를 통해서는 그저 해당 정보를 AI에 곧장 물어보기만 하면 답을 얻을 수 있다.
또한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2차 개발을 진행 중인 AI인 엑소브레인(ExoBrain)과 같이 통계·법률·특허·금융 등 특정 전문 분야에서의 의사 결정과 판단을 지원하는 영역 역시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이 잠재된 분야다.
이러한 기술적 발전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데이터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떤 상황에서든 수많은 질문에 답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확한 의사결정을 즉각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AI가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통계 데이터를 포함한 다양한 AI 학습 데이터의 축적이 필수적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어떤 말과 환경을 접하느냐에 따라 익히는 것이 달라진다. AI 역시 어떤 데이터를 접하고 학습하느냐에 따라 그 성능이 좌우된다. 다양한 분야의 학습 데이터가 절실한 이유다.
AI 플랫폼의 미래는 결국 ‘학습 데이터’에 달려있다. 특히 통계 자원과 같이 전문적인 영역의 데이터가 MRC를 포함한 인공지능 신기술들과 결합한다면 각종 전문 분야에서의 전문가 의사 결정을 지원하는 데서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나올 것이다.
이렇게 AI 서비스가 더욱 폭넓게, 동시에 더욱 높은 성능으로 개선되려면 다양한 데이터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AI 학습 데이터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더해진다면, 우리나라의 AI 산업은 결코 세계 시장에 뒤지지 않는 수준으로 발전할 것이라 확신한다. AI 플랫폼을 넘어 AI 포털로 진화하기 위해 다양한 AI 학습 데이터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환기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