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이해하려면 통계에 사람을 먼저 포함하라

2017 WINTER

통계광장

김덕식 | 통계의창 객원기자

경제를 이해하려면,
통계에 사람을 먼저 포함하라

“경제 행위자는 사람입니다. 경제 모델은 사람을 포함해야 한다는 인식이 가장 중요합니다.” 2017년 10월 발표된 노벨경제학상의 영광을 차지한 리처드 H. 세일러(72)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수상 발표 직후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밝혔다.
세일러 교수는 현실에 있는 심리적인 가정을 경제학적 의사결정 분석의 대상으로 통합하는 데 기여했다. 우리가 익히 들은 경제학은 합리적이고(rational), 계산적이며 이기적인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학문이다. 사람은 컴퓨터처럼 무제한의 계산을 실수 없이 해낸다고 믿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의 모습을 보면 이러한 가정에 의문이 생긴다. 경제현상은 사람의 심리를 떠나서 설명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행동경제학은 기존 전통경제학에서 간과하고 있던 사람의 심리를 파고들었다.

행동경제학이 주목받은 건 경제 주체의 비합리적·비이성적 의사 결정과 행동을 이해하는 도구로서 역할을 하면서다. 세일러 교수가 지난 2008년 쓴 베스트셀러 ‘넛지(Nudge)’에서 그 역할이 잘 설명돼 있다. ‘넛지’는 ‘팔꿈치로 가볍게 쿡쿡 찌르다’란 뜻이다. 규제나 강압보다 효율적인 힌트나 설계로 자율적 선택의 폭을 넓혀준다는 게 핵심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소변기의 파리’다. 암스테르담 공항은 소변기에 파리 모양 스티커를 붙여놓는 아이디어만으로 소변기 아래 바닥에 떨어지는 소변량을 80%나 줄일 수 있었다고 이 책은 소개하고 있다.
세일러 교수는 노벨상 수상 직후 인터뷰에서 가장 성공적인 ‘넛지’ 사례로 일부 국가에서 도입한 자동 연금 가입 제도를 꼽았다. 그는 “누구나 연금에 가입하도록 한 뒤 원치 않는 사람은 탈퇴할 수 있도록 정책을 설계했다. 그랬더니 연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 실행하지 않고 미루는 행동을 극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 왜 경제 현상을 분석할 때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지 하나씩 살펴보자.

휴리스틱-경제 활동은 심리에 의해서 움직인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오늘 수많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점심시간 메뉴를 결정할 때나 마트에서 과일을 고를 때를 생각해보자. 평소 먹던 것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것에 도전할 것인가? 해당 품목이 다른 가게보다 저렴할까? 특별한 판촉행사가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들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 상당수는 간단하게 늘 가던 곳에 가거나 보통 사던 과일을 선택한다. 이것이 바로 ‘휴리스틱(heuristic)’이다. 휴리스틱이란 시간이나 정보가 불충분해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거나 굳이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신속하게 사용하는 어림짐작이다. 대부분 사람들의 경제적 활동은 휴리스틱에 기초한다. 그렇지 않다면 삶은 너무나 복잡해졌을 것이다. 사람들이 갖는 휴리스틱에는 대표성 휴리스틱이 있다. 사람들은 정보가 불완전한 상태에서 판단을 내리기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친(bias) 잘못된 결정이 내려질 수 있는 위험을 갖고 있다. 대표성 휴리스틱이 이러한 특징을 지녔다. 대표성 휴리스틱은 어떤 사건이 전체를 대표한다고 보고 이를 통해 빈도와 확률을 판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속담이 대표성 휴리스틱을 표현하는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빅데이터 시대 더 각광받는 베이즈 통계

우리가 살다보면 불확실한 상황에서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경우가 생긴다. 새로운 식당 선택처럼 비교적 간단한 결정 외에 이직이나 이사 등 삶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선택까지 다양하다. 우리는 이러한 결정을 내릴 때 새로운 정보를 학습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새로운 정보를 이용하면 불확실성을 조금이나마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보를 얻기 위해 TV, 라디오, 인터넷, 신문, 가족과 친구에게서 새로운 정보를 얻는다.
예를 들어 회사에 생긴 일로 맘이 상한 甲이 씁쓸한 마음을 달래고자 친구들과 술을 겸한 저녁식사를 계획했다. 그는 기분전환으로 오늘은 새로운 메뉴를 선택하려고 한다. 그는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메뉴와 장소가 무엇인지 여러 채널을 통해 정보를 모을 것이다. 그는 새로운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까? 이 과정에서 우리는 통계의 힘을 빌린다. 해답의 실마리는 ‘베이즈 정리(Bayes’ theorem)’다.
베이즈 정리는 영국의 수학자 겸 목사 토머스 베이즈(1701~1761)가 발견하고, 훗날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가 완성했다. 베이즈 정리가 다루는 확률은 주관적이다. 객관적인 수치가 아니라 인간의 심리에 의존한 것이기 때문이다. 베이즈 통계가 사상적인 면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올 확률이 50%지만, 찌그러진 동전을 던졌을 때는 확률이 달라진다. 이럴 경우 공장에서 찌그러진 동전이 생산될 확률을 구해 추가로 반영해야 한다. 이처럼 새로운 상황과 정보가 나오면 가장 가능성이 있는 것을 골라 적용해 확률을 수정해 나가는 것이 바로 베이즈 정리다. 이런 의미에서 베이즈 통계는 조건부 확률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조건부 확률에서는 새로운 정보를 알았을 때 확률의 개선이 일어나게 된다. 우리는 어떤 실험결과에서 나온 정보를 이용해 어떤 사건의 처음 확률을 개선시킬 수 있다. 여기서 처음 확률은 사전확률(prior probability)이라 하고, 개선된 확률을 사후확률(posterior probability) 이라고 한다. 甲은 줄어든 호주머니에서 기분 좋은 저녁식사 시간을 위해 새로운 정보를 계속 수집해 나가고, 새로운 정보에 근거해 저녁식사 당일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것이다.
베이즈 이론이 이처럼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 한다’는 특징 덕분에 데이터가 많을수록 확률도 정확해진다. 데이터가 바뀌면 예측도 저절로 수정된다. 컴퓨터의 논리구조와 유사하다. 초기에는 엉성했던 번역 프로그램들이 갈수록 정확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점에서 빅데이터 시대를 맞은 지금 베이즈 정리가 더욱 주목을 받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베이즈 이론과 행동경제학의 발달과정에는 유사점이 있다. 기존 굳건한 학계의 비판을 극복했다는 점이다. 주관적인 믿음을 측정하기 때문에 합리적이지 않다는 이유에서 베이즈 정리는 오랫동안 금기시되기도 했다. 베이즈 정리를 언급하면 대학에서 자리를 얻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전해질 정도다. 하지만 최근 컴퓨터의 계산 능력이 급증하고, 더불어 사후확률의 계산을 몬테카를로 방법 혹은 변분추론과 같은 기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베이즈 정리가 점차 확산됐다.
행동경제학 역시 주류 경제학과는 기본적인 가정이 달라 오랜 기간 설움을 겪었다. 세일러 교수의 올해 노벨상 수상은 곧 주류 경제학계로부터 이단 취급을 받아온 행동경제학의 쾌거로 평가받고 있다. 인간의 비합리성을 강조하는 행동경제학자들의 주장은 주류 경제학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관적인 믿음을 측정하는 베이즈 정리와 경제학이 만나 사람의 심리적 특성을 활용하는 행동경제학이라는 꽃을 피우고 있다. 공통의 역사적 분모를 가진 두 분야가 만난 셈이다.

심리적 회계-운수 좋은 날 사람들의 선택은

세일러 교수가 개발한 이론으로 대표적인 것이 ‘심리적 회계(mental accounting)’다. 이를 통해 인간심리를 분석해 개인이 개별적으로 내리는 결정에 집중했고, 어떻게 재무적인 결론으로 이어지는지 설명했다. 비오는 날 택시 이용자가 늘기 때문에 택시가 더 잘 잡혀야 하지만 택시 운전사들은 하루 매상을 다 올렸다고 생각해 먼저 퇴근하면서 택시가 잡히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만약 택시 운전사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면 손님이 많은 날 운행을 더 많이 하고 맑은 날 쉬는 것이 옳지만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사회적 선호현상-인간은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

세일러 교수는 또 인간의 사회적 선호현상을 강조했다. 인간이 이기적인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함께 잘 살기 위해 이타적 행동을 할 때도 있다는 의미다. 세일러 교수가 심리학자 등과 함께 고안한 ‘독재자 게임’에서 관찰할 수 있다. 독재자 게임은 두 사람을 짝을 지어주고 돈을 준 뒤 한 사람은 분배자로, 한 사람은 수령자로 나눠 진행된다. 수령자는 돈을 나눈 결과에 어떤 저항도 할 수 없고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 주류경제학의 가정에 따라 인간이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면 분배자는 모든 돈을 독차지해야 한다. 하지만 이 실험을 수행한 결과 분배자들은 전체 돈의 25%가량을 수령자에게 줬다. 만약 분배자가 돈을 독점한다면 인간적 유대와 같은 사회적 경향이 무너지기 때문에 수령자에게 일부 떼어준다는 것이다.
세일러 교수의 연구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 부각했다. 인간의 합리성이 반드시 전체의 후생복리를 높이는 방향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반성이 확산된 분위기 속에서 세일러 교수의 연구가 주목받은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벌어졌던 어이없는 상황들이 바로 세일러 교수의 전공 분야였던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그는 미국인들의 저축과 연금 플랜을 다듬어 빚더미에 앉은 미국을 구한 경제학자로 평가받기도 한다.

행동재무론-인간은 바보같은 행동을 하는가

행동경제학은 자본시장 연구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합리적 투자자에 기반을 둔 자본시장의 효율성이 1980년대 실증연구에서 다양한 시장 이상현상(market anomalies)들이 발견되면서 그 효용성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실적인 차원에서 투자자 심리의 비합리성을 고려한 행동재무론(behavioral finance)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투자자들을 비합리적으로 이끄는 주요 심리적 요인들로는 앞서 언급한 심리적 회계를 비롯해 과신(overconfidence), 현상유지(status quo) 본능, 정박효과(anchoring effect)와 군집행동(herding behavior) 등이 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지나치게 과신한다. 세일러 교수는 일반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로 ‘자기 과신’을 꼽았다. 그는 “만약 스스로 잘 나가는 투자자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의 실제 수익률이 얼마인지 계산해보라”면서 “대부분의 투자자는 거래수수료를 떼어내면 시장수익률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합리적 인간이라면 좀 번거롭더라도 자기에게 유리한 쪽을 택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이미 익숙한 일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이런 인간의 특징을 ‘현상유지편향’이라고 한다. 이는 익숙한 대상에 안주하려는 경향으로 주로 그 대상으로 포기함에 따른 아쉬움이나 두려움, 고통을 피하고자하는 본능에서 나온다. 투자자들은 다양하고 화려한 투자결과를 원하면서도 한 두 개의 주식종목에만 집착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정박효과는 또 다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이 규정한 개념이다. 투자자가 숫자(기업매출액 등)에 꽂히면, 집착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어 새로운 정보를 접할 때 기존 수치를 조정하지만, 이미 애초 숫자에 집착한 뒤라 조정 폭이 충분히 크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에 알고 있던 지식을 고집하고, 새로운 정보를 쉽게 수용하지 않으려 한다. 특히 노년층으로 갈수록 정박효과는 강하게 나타난다.

군집행동은 한 사람의 행위가 다른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투자행위를 말한다. 무리에서 뒤처지는 걸 싫어해 다른 이들을 따라 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투자자들이 공황 상태에 빠져 투매할 때는 물론 안전하게 다수의 행동에 편승할 때도 나타난다. 가격이 상승하면 우르르 사고, 하락해도 우르르 파는 현상이 벌어져 가격이 극단적인 모습으로 형성된다. 상승국면에선 언젠가 더 높은 가격을 부담하고 물량을 매수하고자 하는 세력이 나타날 거라는 기대로 매수에 나서고, 하락국면이면 가격이 바닥까지 떨어져 더는 하락할 공간이 없을 때까지 매도하는 원리다.

시장 이상현상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가 ‘캘린더 효과’다. 캘린더 효과란 공휴일 다음날이나 주말을 쉬고 난 다음날의 시장 평균수익률이 다른 날의 수익률보다 높다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과거 데이터를 가지고 휴일 다음날과 평일 사이에 수익률의 차이가 존재하는지를 통계적으로 분석해 보니 휴일을 보낸 다음날의 주가들이 유의미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식시장이 전통적인 경제이론처럼 효율적이라면 특정 요일과는 상관없이 유의미한 수익률 차이가 없어야 한다. 학자들은 캘린더 효과를 많은 투자자들이 합리적인 근거 없이 휴일이 지난 다음날 주식이 오를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를 하는 성향이 크다는 데서 원인을 찾았다.
대표적인 캘린더 효과로는 1월 효과, 서머랠리(summer rally), 산타랠리(santa rally)와 추수감사절을 전후한 미국 증시의 오름세 등이다. 1월 효과는 연말·연초에 집중된 보너스들이 증시로 흘러들고, 새해를 맞아 주식 분석가들이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으면서 1월의 주가 상승률이 다른 달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서머랠리는 펀드매니저들이 긴 휴가를 떠나기 전에 가을 장세를 기대하고 미리 주식을 사 놓기 때문에 휴가를 앞둔 초여름에 주가의 단기 급등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산타랠리는 연말에 소비 증가세가 나타나면서 연말장 종료 5일 전부터 이듬해 2일까지 증시가 강세를 보이는 현상이다. 또 미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추수감사절(11월 넷째 목요일)을 전후해 증시가 오른다. 이처럼 월별 주기에 따른 캘린더 효과 외에 ‘주말효과’, ‘월요일 효과’ 등으로 기간을 더욱 세분화해 증시 상황을 설명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