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장석권 |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데이터가 들려주는 이야기…
보이지 않는 세상의 모습

철학은 어디에나 잘 어울리는 머플러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디에 붙여도 그럴듯해 보입니다. 그런데 데이터에도 철학이라는 단어가 어울릴까요. 문과 이과라는 이분법에 익숙해진 사고 때문인지, 데이터 철학이라는 말이 어색하게만 느껴집니다. 잠시 데이터를 들여다봅시다. 무엇이 생각나는가요. 우리는 지금 왜 데이터라는 단어를 많이 얘기하고 있을까요. 수많은 사람이 지나가지만 길가에 홀로 떨어져 있는 풀잎에 눈길을 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그 풀잎을 보고 다양한 세상을 들여다보곤 합니다. 어쩌면 철학은 이런 관점일지도 모릅니다. 길에 버려진 풀잎을 가져와 집에 있는 화분에 심어 둡니다. 매일 물을 주고 잎을 닦아주면 그 풀잎은 내게 말을 걸어옵니다. 풀잎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그 풀잎이 어떤 삶을 사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게 됩니다. 결국 세상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은 그 사물에 얼마나 애정을 쏟았는지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가까이 지내다 보면 그 데이터가 얘기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나 봅니다. 『데이터를 철학하다』는 책은 그런 의미에게 반갑게 느껴졌습니다.

▶ 경영학 분야에서 많은 이슈사항이 있을 것인데, 『데이터를 철학하다』라는 책을 쓰셨습니다. 왜 데이터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는지요

데이터는 다른 어떤 분야와 마찬가지로 경영학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경영학 전공분야 중 하나인 경영정보시스템 분야는 데이터, 정보, 지식, 지혜의 데이터 계층구조를 기반으로 정보기술과 정보시스템을 다룹니다. 생산성 향상, 합리적 경영의사결정, 효과적인 경쟁전략 수립, 그리고 시장과 조직 내에서 소비자와 종업원의 행동에 대한 이해 등을 정보의 관점에서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모든 것은 데이터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모든 고민의 출발점은 데이터에서 시작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 사실 저도 데이터를 어떻게 봐야할지 고민이 많은데요. 데이터를 대할 때 어떤 점이 중요할까요

데이터는 기본적으로 사실이나 현상, 개체의 속성이나 행동, 심지어 정서 등에 관한 관찰의 기록입니다. 과거에는 관찰의 대상이 주로 자연현상이나 사회현상이었는데, 이제는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그 대상이 인간의 행동과 대화 등으로 옮겨 가고 있습니다. 카카오톡의 대화나 인스타그램의 사진, 그리고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를 통해 기록되는 개인 생활상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요즘 빅데이터 관련하여 많은 교육이 있지만 여전히 데이터에 대해서 어렵게 느끼는 이유는 이런 교육들이 대부분 데이터를 다루는 방법만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리에 비유하자면 재료를 모으고 다듬는 방법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맛있는 음식을 조리하는 방법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 데이터를 요리하는 조리법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시다는 말씀이네요

예를 들어 물리학 분야에서 우주가 어떻게 작동할까에 대한 의문은 상대성 이론을 통해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도 이와 같이 세상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필요합니다. 데이터는 그런 이론을 실증적으로 탐구하고 입증하는 출발점입니다. 조리법은 데이터라는 재료를 가지고 세상의 변화원리를 파악하고 재구성하여 멋진 결과를 만들어내는 비법입니다. 그 비법을 터득하기 위해서는 데이터를 모으고 다듬는 기술뿐 아니라, 이를 조리해서 맛있게 가공하는 기술, 즉 연구방법론과 이론통계학에 대한 공부도 필요합니다.

데이터 정책은 비단 국세청 홈택스에 머물지 않고, 정치·경제·사회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그 어떤 대상에 대해서도 적용 가능합니다.
분야별 시스템이 구축되어 확산될수록 국가사회전반의 투명성은 향상될 것이고,
이는 다시 국가정책의 성과를 끌어올리는데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 관찰 결과의 불완전성을 ‘모나리자 그림을 문자로 설명하는 것의 한계성’을 통해 보여주신 부분이 개인적으로 재미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통해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 과잉은 우리를 또 다른 위험 요소에 노출되게 하는 것 같은데, 이런 수많은 정보 속에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판단해야 하는 것일까요

과거에는 정보부족이 문제였지만, 이제는 정보의 과잉이 더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정보소화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실제 소화되는 정보의 관점에서 보면, 정보의 부족도 무지로 연결되지만, 정보의 과잉 역시 우리의 두뇌를 무디게 만듭니다. 소위 피로 현상입니다. 과다한 부하가 가해지면 우리의 두뇌는 피로해지고, 피로해진 두뇌는 정보의 습득을 아예 차단하는 경향까지 보입니다. 스마트폰의 각종 앱과 SNS를 통한 사회적 교류에 지나치게 많이 노출되면 정보 과잉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우리 두뇌의 집중도와 정보처리능력을 떨어뜨릴 위험이 있습니다. 이제는 무엇을 보느냐보다는 어디에 집중하느냐가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문제를 발견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 영화 ‘레디플레이어원’에서 보면 미래 사람들은 현실이 누추하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지만 가상현실에서 꿈을 이루고자 발버둥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미래 현실과 가상현실은 어떻게 공존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가상현실은 또 다른 욕망 실현의 공간의 대체제가 될 수 있을까요

우리 현실에서도 MMORPG 게임을 보면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다수의 플레이어들이 함께 가상의 게임공간에 들어가서 괴물들과 싸우면서 무기를 획득하고 이를 통해 그 세상에서 성주와 같은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은 일종의 현실모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인지하든 인지하지 않든 유사한 형태의 가능현실은 점차 확장되고 현실감도 더욱 강화될 것입니다. 이런 추세를 감안하면, 가상현실이 다른 욕망을 실현하는 현실공간의 대체제가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문제는 그 정도가 점차 심해져서 현실공간을 회피하고 가상공간에서만 머물고자 하는 성향이 지나치면, 소위 ‘폐인’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는 인간 고유의 정신건강을 해치고, 심리적으로 현실로부터의 도피처로 발전하게 될 위험이 있어 사회적으로도 적절히 규제되고 관리되어야 할 영역입니다.

▶ 많은 SF영화들이 미래사회를 어둡게 그리고 있습니다. 교수님은 인공지능의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시고 계시는지요

세상에 존재하는 실체는 빙산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우리는 그 일부분을 보지만 실체는 보이지 않는 물밑에서 엄청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모르는 부분 때문에 많은 불안을 느낍니다. 10년 전으로 되돌아가 봅시다. 그때 조그마한 휴대폰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유튜브를 통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볼 수 있다고 상상해 보았다고 가정해봅시다. 우리는 그런 미래의 기술에 대해 놀라거나 혹은 두려워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기술이 실현된 현재는 우리는 아무런 느낌 없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관점으로 본다면 정말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거거든요. 우리는 무엇이 변했는지 인지하고 놀라워하기보다는 이런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미래도 그와 같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 생활에 익숙해져 느끼지 못하고 생활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마 우리의 모든 정보가 수집되고 활용되는 세상에 적응하고 그에 맞게 생활해 나갈 것입니다.

▶ 스티븐 호킹과 일론 머스크는 인공지능 기술의 독점에 대한 폐해에 대하여 큰 우려를 나타내었습니다. 과거 우리나라가 서양의 과학기술을 늦게 받아들이는 관계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인공지능 경쟁력은 어느 정도 수준인지요? 앞으로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 필요한 사항은 무엇인지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 기술경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중국은 국가차원에서 조 단위의 연구비를 투입, 세계적 인재를 중국의 대학과 기업으로 유치하여 주도권을 확보하는 전략을 쓰고 있고, 미국의 경우도 몇몇 재력가가 막대한 재원을 투입해서 인공지능 분야에서 선도적 연구를 지원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인공지능 경쟁력은 취약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아직 세계적 수준의 인공지능 인재를 기를 수 있는 임계규모가 형성되어 있지 못합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미국이나 중국만큼의 재원을 전 방위로 투입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인만큼, 우리나라만의 차별적인 인공지능 산업생태계를 조성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거기에는 중장기적인 연구기획에서부터 시작해서 연구재원의 조달, 연구 인력의 확보 및 육성, 그리고 응용생태계 조성을 위한 추진체계를 담은 마스터 플랜을 수립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 기업의 성장 전략이 과거에는 격투기 선수였다면 이제는 아이돌 사업으로 변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자기자본과 수익력만으로 성장을 추구하는 시대가 가고 아이돌 그룹처럼 시장성을 계속 심사 받고 상품성을 갖추어야하는 시대로 보셨습니다

과거의 사회 경제 패러다임은 공급이 먼저, 수요가 나중에 따라오는 방식이었습니다. 즉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면 수요는 저절로 따라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전반적으로 공급이 수요에 못 미치는 시대의 얘기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공급이 과잉되어 생산이 이루어져도 손익분기점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례가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비자는 자신에게만 개인화된 제품이나 서비스를 요구하는 일명 ‘매스커스터마이제이션(mass-customization)’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달라진 시장상황에 맞추어 이제는 아이돌 사업처럼 미완성의 제품 컨셉, 시제품을 미리 시장에 보여주면서 시장으로부터의 반응에 따라 제품을 수시로 변경하고 시장기반으로 커스터마이제이션을 실행해 가는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이를 프로토타이핑(prototyping)이라고도 하지만 더 나아가 프리토타이핑(pretotyping)이라는 신조어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런 미래에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아이디어 구상단계에서 최종 제품을 출시하기까지 부단하게 시장과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제품과 서비스를 완성시켜 나아가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개발의 운전대를 아예 시장에 맡기는 용기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 미래 인류로 ‘호모 소포스(Homo sophos)’라고 지혜로운 인간상을 제시하셨습니다. 미래 사회 필수 요소로 일이나 사회를 보는 지혜를 많이 강조하셨습니다. 변화가 빠른 미래에 생존을 위해 어떠한 학습 자세가 필요한지요

자동차가 자율주행자동차로 변모해 가듯이, 우리의 경제사회시스템 자체도 자율주행 경제사회시스템으로 발전해 갈 것입니다. 이 경우, 인간이 상대해야 할 대상은 인간만이 아니라, 경제사회기술시스템에 이식된 기기, 알고리즘, 인공지능도 포함됩니다. 이들 자동화기기 또는 프로세스에 의식 없이 적응하는 인간은 지혜로운 인간이기보다는 기계에 노예화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호모 소포스는 그런 의미에서 인간본연의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개인적 이기심이나 개인적 욕구의 극대화가 아니라 전체 속에서 개인의 역할을 최적화할 줄 아는 그런 인간상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학습도 개인적 학습보다는 사회적 학습이 훨씬 중요하고, 사회 속에 내재된 학습 메커니즘이 제대로 서 있는 사회가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미래사회입니다. 개인은 똑똑하나 집단으로서의 사회가 미련하다면 제대로 된 학습사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 사회적 학습이라는 말이 좀 어렵네요

예를 들어 무단행단을 하는 도시하고 정해진 교통질서를 지키는 도시가 있다고 해봅시다. 어느 도시에서 교통 흐름이 더 원활할까요. 스마트 스웜이라는 책을 보면 개미무리나 벌무리는 개개의 존재는 보잘 것 없지만 집단 전체적으로는 아주 효율적으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개인이 똑똑한 것이 아니고 집단이 똑똑한거죠.

▶ 교수님은 한국경영정보학회 부회장, 한국미디어경영학회 회장, 정보통신정책학회 회장, 한국경영과학회 회장을 역임하셨는데요. 우리나라 데이터 관련 정책 방향은 어떻게 가야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국가차원의 데이터 정책 시나리오부터 우선 정립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떠한 정책목표에서 어떠한 데이터를 모으고 가공해서 서비스화해야 하는지를 구체화하고, 그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는 법제들을 면밀히 검토해서 개정하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예로서 국세청 홈택스 서비스를 살펴봅시다. 이 시스템을 보면, 개개인의 소득정보를 원천징수 의무자가 보고하면 홈택스에서 이를 개인별로 집계하여 소속조직의 연말정산 시스템으로 자동이관되도록 해 줍니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분산형으로 수집, 처리, 전달, 가공되나 그 과정에서 개인정보는 철저하게 보호됩니다. 이러한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은 경제사회시스템 전반의 투명성을 크게 향상시킨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데이터 정책은 가시적인 성과를 분명하게 설정해 놓고 마련되어야 합니다. 그 분야는 비단 국세청 홈택스에 머물지 않고, 정치·경제·사회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그 어떤 대상에 대해서도 적용 가능합니다. 분야별 시스템이 구축되어 확산될수록 국가사회전반의 투명성은 향상될 것이고, 이는 다시 국가정책의 성과를 끌어올리는데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 통계분야 종사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이 있으시다면

통계청은 국가경제정치사회 전반의 거울을 만드는 기관입니다. 우리는 통계청이 제공하는 통계정보를 통해 우리나라 정치경제사회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통계청이 제공하는 거울이 없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통계분야 종사자들이 국가경제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현재 데이터 분야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일차적으로 통계청은 거대표본, 실시간 데이터, 멀티미디어 데이터, 원천 데이터라는 네 가지 속성이 충족되는 빅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다음으로는 데이터 제공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는 차원에서 인터페이스 개선, 시각화 툴의 제공 등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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