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의 여유김여환 | 가정의학과전문의, 김앤권 대표원장

창가의 여유

우리의 면역력을
좋게 만드는
힐링 여행

“코로나19, 결국 면역력 싸움입니다!”– 『면역의 혁명』, 정신과전문의 이시형 박사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1980년대 후반에 등장해 우리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에이즈를 지금은 보건소에서 검사하고 관리하는 일상이 된 것처럼, 코로나19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다. 인간에게 해롭지 않은 비병원균성 바이러스가 백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면서 순식간에 전 세계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험했고, 코로나19가 무증상으로 쉽게 넘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면역력이 약하면 독하게 앓다가 사망에 이르는 극단적인 예후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래서 요즘은 무조건 ‘면역’이다.

한 방송국에서 「면역력이 좋아지는 힐링 여행!」을 촬영하자고 했다. 의사와 환자가 공기 좋고 경치 좋은 곳을 여행하면서 건강의 핵심을 찾아가는 주제다. 모든 병이 그렇겠지만 개인의 면역 상태도 라이프스타일과 밀접하다. 달랑 하루 여행을 간다고 해서 잃었던 건강을 되찾을 수는 없겠지만 건강가이드로서 내가 할 일은 환자의 나쁜 라이프스타일을 알아내고 좋은 쪽으로 안내하는 역할이었다. 진료실이라는 한정된 공간과 짧은 진료 시간으로는 라이프스타일을 세세하게 알아낼 수 없다. 이야기하면서 걷고 건강한 음식을 함께 만들어 먹는 힐링 여행은 잘못된 라이프스타일을 알아내고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 같았다.

잘못된 라이프스타일은 수십 년에 걸쳐 사람을 병들게 만든다. 서서히 나를 파먹기 때문에 몸을 망쳐놓은 범인인 줄도 모른다. 설사 안다고 해도 그 습관에 익숙해져 있어서 쉽게 못 바꾼다. 오죽하면 ‘습관이 쌓이면 운명이 된다’고 하겠는가.

나도 건강을 해치는 몇 가지 나쁜 습관이 있었고 수년에 걸쳐서 바꿨다. 운동신경이 둔해서 움직이는 것을 싫어했지만 헬스트레이너 자격증에 도전했고, 계란말이 하나도 깔끔하게 하지 못할 정도로 요리에 소질이 없었지만 항암 건강 요리책을 썼다.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 모두가 인슐린을 써야 할 정도의 당뇨병에 시달리고 있지만, 나만은 56세인 나이에 아직 당뇨가 없는 것은 이런 노력 덕분일 것이다. 여행에서 만나는 환자에게도 내가 학교에서 배운 의학적 지식이 아니라, 내가 실천해 온 라이프스타일을 알려주고 싶었다.

의사가운 대신 등산복을 입고 진료실을 벗어나 충청남도 청양군에 위치한 칠갑산으로 떠났다. 매운맛의 대명사, 청양고추로 유명한 바로 그 청양이다. 고추박물관을 비롯해서 빨간 고추 조형물이 버스 정류장 곳곳에 보였다. 아침 9시, 칠갑산 출렁다리 앞에서 애경(가명, 46세) 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겉보기에는 건강해 보였지만 벌써 7년째 당뇨에 시달리고 있었다. 최근에 측정한 당화혈색소가 10.3이라고 하니 평소 혈당이 250 이상인 환자였다.(당뇨병: 공복혈당 125 이상, 식후 2시간 혈당 200 이상.) 내과에서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고는 있고 식단도 열심히 하는데 당이 떨어지지 않아서 걱정이라고 했다.

그녀를 제일 괴롭히는 것은 자꾸 재발하는 허벅지 뒤쪽의 수포성 대상포진과 칸디다성 질염이었다. 그야말로 면역이 떨어져서 정상인은 잘 걸리지 않는 감염이 생기고 있었다. 이런 경우 혈당을 적극적으로 조절하는 것이 급선무다. 대상포진이 느껴지면 바로 병원으로 가서 항바이러스제를 처방받아야 하는 것도 알려줬다. 그녀는 이미 심각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이번 여행을 마치면 입원을 해서라도 혈당을 조절해야겠다고 했다.

칠갑산은 평지가 많은 산이라서 무릎이나 허리가 약한 사람도 가볍게 등산하기 좋은 곳이다. 피톤치드가 많다는 침엽수 아래에서 애경 씨와 나는 마스크를 잠시 벗었다.(코로나19 때문에 2미터 이상의 거리를 유지했다.) 칠갑산 입구에 넓게 자리 잡은 천장호 호수에는 구름 속 솜털까지 선명하게 비쳤다. 미세먼지 한 톨 없는 깨끗한 철갑산의 산소를 온몸에 담아서 가져가고 싶었다. 애경 씨에게 복식호흡을 가르쳐주었다.

복식호흡법

1. 가을 하늘을 품고 있는 호수를 지긋이 바라보면서 호흡이 자연스럽게 나가고 들어오는 것을 느낀다. (시선을 15°유지하는 것이 좋다. 고개를 숙이면 목에 있는 중요한 호흡근인 사각근이 긴장하므로 고개를 살짝 들어야 한다.)
2. 완전히 ‘후~~’ 하고 입으로 공기를 내뿜는다.
3. 한 번 코로 공기를 들이마시고, 2번에 걸쳐 나누어서 입으로 ‘후~ 후~’ 내쉰다.
4. 두 번 코로 공기를 들이마시고, 4번에 걸쳐 나누어서 입으로 ‘후~ 후~ 후~ 후~’ 내쉰다.
5. 세 번 코로 공기를 들이마시고, 6번에 걸쳐 나누어서 입으로 ‘후~ 후~ 후~ 후~ 후~ 후~’ 내쉰다.
6. 들이마신 횟수의 두 배로 호흡을 천천히 뱉는 연습이다. 열 번까지 들이마시고 스무 번으로 나누어 내쉰다.
이 동작을 3회 반복한다.

호흡에는 들숨과 날숨이 있다. 보통은 들어 마시는 호흡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날숨을 천천히 잘 내뱉어야 새로운 공기를 들이마시는 들숨도 잘할 수 있다. 들이마신 횟수의 두 배로 천천히 내쉬는 것이 복식호흡의 매력이다.

“비워야 채워지고, 버려야 얻는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이 인체에서도 통한다.

산행 때문에 혹시 애경 씨가 저혈당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당검사를 했더니 136이 나왔다. 최근 측정한 혈당 중에는 제일 낮다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있었는데 청양으로 오니까 몸과 마음이 날아갈 것 같다고도 했다. 역시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인가 보다.

청양이 고추 말고 구기자도 유명하다는 것을 청양에 가서야 알았다. 촬영 팀은 우리를 2020년 청양 구기자왕으로 선정된 오용재 씨 농장으로 안내했다. 마침 수확 철이라서 아이들처럼 생과를 직접 따보는 체험학습도 할 수 있었다. 한 줄기에 30개 정도 조롱조롱 열린 새빨간 구기자는 보기만큼 맛도 달았다.

구기자왕은 구기자가 치매, 당뇨, 면역 등 모든 병에 좋다고 설명했지만, 의사인 내 눈에는 토마토처럼 빨간 색소에 많은 라이코펜이 풍부해서 좋아 보였다. 그래도 당분이 꽤 있어서 당뇨환자는 혈당을 체크하면서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오동통하고 빨간 구기자를 한 소쿠리 얻어서 마지막 여행코스인 글램핑 캠핑장으로 향했다.

면역력이 떨어진 당뇨병 환자를 위해서 버섯불고기와 채소 쌈을 준비했다. 불고기는 단백질 공급원이고 버섯은 섬유소와 베타글루칸이 풍부해서 당 조절과 면역세포 활성화에 좋다.

늘 해 먹는 불고기지만 맛은 같고 조리법은 달랐다. 단맛에는 저칼로리 감미료인 스테비아를 사용했고, 비타민D가 풍부한 목이버섯을 많이 넣었다. 스테비아만 넣으면 인위적인 단맛을 느낄까봐 농장에서 얻어온 구기자도 약간 넣었다. 구기자가 없으면 올리고당이나 설탕으로 해도 된다.

파, 마늘과 양파도 평소보다 많이 넣었다. 우리가 양념이라고 부르는 파, 마늘 같은 식재료에는 천연방부제인 항산화물질이 아주 많다. 파이토케미컬이라고 부르는 성분은 암이나 병균과 싸우는 면역세포 활성화에 좋다.

그러나 오늘의 가장 중요한 요리의 포인트는 탄수화물을 최소로 한 불고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애경 씨에게 가장 중요한 면역력은 혈당조절이기 때문이다. 생애주기에 따라 질병이 달라지듯 요리법도 나이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다르게 먹어야 내가 먹는 음식이 나를 보호한다. 그렇지 않으면 음식 때문에 병에 걸리고 음식 때문에 병이 악화된다. 같은 소고기로 요리를 하더라도 물엿과 설탕을 듬뿍 넣고 거기다 참기름까지 고소하게 끼어얹은 불고기에 길들어 있다면 서서히 바꾸어야 한다.

꼬박 12시간을 촬영했다. 산에서는 해가 일찍 져서 저녁에는 추웠다. 애경 씨는 지쳐 보였다. 그러나 카메라가 돌아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말을 잘했다. 나는 그 반대였다. 재미있게 이야기하다가도 카메라만 비추면 영 어색했다. 애경 씨는 취미가 연극이라고 했다. 정식으로 연기를 배운 적은 없지만 가끔 엑스트라 섭외가 들어오면 영화도 찍는단다. “수입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제가 참여한 영화가 개봉하면 주인공도 아니면서 괜히 뿌듯해요”라고 말했다.

촬영 팀은 정면에서 한번 찍고 드론을 띄워서 똑같은 장면을 한 번 더 촬영했다. 그러니까 시간이 두 배가 걸렸다. 우리도 같은 장면을 두 번씩 반복했다. 그녀는 드라마 촬영을 할 때는 똑같은 신을 정면, 좌우, 후면으로 계속 반복해 찍는다고 했다. 그러다 보면 밤을 꼬박 새고 혈당이 높아서인지 매우 지친다고 했다. “혈당이 조절되면 지금보다 덜 피곤하게 그 일을 하실 겁니다”라고 말하면서 나의 꿈도 곰곰이 생각해봤다.

여행은 떠나는 즐거움도 있지만 일상으로 행복하게 돌아오기 위한 기쁨도 있다. 애경 씨가 ‘힐링 여행’을 통해서 자신의 꿈을 건강하게 완성하는 멋진 일상이 펼쳐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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