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가의 여유
- 김여환
- 가정의학과전문의 / 의학박사
100살까지 뇌를 지키는
8가지 방법
“배 아프신 것은 좀 어떠세요?”
“아이고, 친절도 하지. 이렇게 자주 찾아와서 고마워. 그런데 동사무소에서 나왔어?” 의사가운을 입고 아침, 저녁으로 회진하는 나에게 천연덕스럽게 이렇게 되물었다. 이것이 치매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런 증상이 보이면 치매는 벌써 집에서 감당하기 힘든 중증단계이다.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은 치매를 앓고 있고, 80세가 넘으면 4명 중의 1명이다. 그러나 치매는 더 이상 노인의 병만도 아니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에 따르면 40대 치매환자가 2001년 563명에서 2008년 862명, 50대가 1,901명에서 4,369명으로 늘었다. 2010년 65세 미만의 중년 치매 환자가 7년 전보다 3배가 늘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 치매에 대한 가족력, 중금속 노출을 비롯한 유해 환경 노출과 나쁜 생활습관이 중년기 치매를 증가시키는 것으로 보고 있지만, 확실한 이유는 아직 모른다.
당신의 뇌는 건강하십니까?
신경학자 이영진 박사는 “간을 건강하게 하면 간 기능만 좋아지지만, 뇌를 건강하게 하면 뇌뿐만 아니라, 인생이 바뀐다.”라고 한다. 그러나 뇌를 지키는 방법은 그렇게 거창하지가 않다. 운동할 때 헬멧을 쓰는 것에서부터 이를 잘 닦고, 잠을 잘 자고, 삶의 목표를 가지라는 어쩌면 지극히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이 대수롭지 않은 생활습관 때문에 30년 뒤 자식조차 기억 할 수 없는 참혹한 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건강한 노년은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선물이 아니라, 바쁘게 살아가는 중년이 사소한 것도 허투루 보지 않고 정성스럽게 만들어 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골든타임은 심장마비나 뇌출혈에 국한되는 말이 아니다. 당신의 뇌 건강, 인생이 바뀌는 골든타임은 바로 ‘오늘’이다.
치매와 뇌손상_뇌를 보호하고 뇌의 가소성을 키워라
권투선수 알리나 풋볼선수가 나이 50을 넘기면서 치매에 걸리는 것을 볼 때 뇌에 충격을 주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자동차나 오토바이 사고같이 한 번의 손상이라도 큰 충격을 받는 경우뿐만 아니라, 권투나 격투기, 축구 등 경미하지만 반복적으로 머리에 충격이 가해지는 운동도 외상성 뇌손상으로 인한 치매를 발생 시킬 수 있다. 자동차 안전벨트를 맨다거나, 자전거를 포함한 다양한 스포츠 활동에서 반드시 헬멧을 착용해야한다.
또 과도한 정신적 충격, 만성통증과 같은 지속적인 작은 스트레스도 치매 발병률을 높인다. 지속적인 통증이 시작된 사람들은 통증이 없는 사람들에 비해 이후 10년간 기억력 테스트에서 하락 속도가 9.2%나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만성 통증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촉진시켜 인지력 감퇴를 초래할 수 있다. 견딜 수 없는 마음의 상처나 과도한 스트레스도 머리에 가해진 물리적 외상과 비슷하다. 지진이 지나간 집에 균열이 생기듯 뇌세포를 약해지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긍정적인 삶의 목표는 뇌의 가소성을 높여 뇌를 건강하게 만든다. 새로운 지식을 잘 받아들이고 문화와 예술에 관심을 보이는 성향의 사람들이 뇌의 퇴화나 치매 위험이 적은 것으로 나타난다. 나이 들면서 고집이 세어진다면 치매를 조심해야 한다. 변화를 인정하고 새로운 목표를 추구할 때 뇌는 건강해진다.
근감소와 치매_당신의 엉덩이 근육이 뇌 건강을 결정한다
나는 회진을 할 때 환자와 악수를 꼭 한다. 악력이 가장 손쉽게 환자의 근력을 예측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스웨덴 옌셰핑 대학은 20년 동안 700명을 대상으로 관찰한 결과 65세 노인의 악력이 급격히 줄면 언어능력, 기억력 등의 인지능력이 떨어져 치매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했다. 그러나 일부러 악력기로 악력만 키우면 오히려 방아쇠 수지증후군 같은 병으로 고생한다. 전신 근력이 향상되어 자연스럽게 악력이 증가되어야 한다.
근육은 40세를 기점으로 해마다 1%씩 줄어든다. 80대에 이르면 30대 때의 근육의 절반 정도만 남는다. ‘근감소증’이 위험한 이유는 각종 질환의 도화선이 되기 때문이다. 근육은 팔다리를 움직이고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기관으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뼈와 혈관, 신경, 간, 심장, 췌장 등 신체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강제적인 근육 키우기에 목숨 걸 필요는 없다. 몸짱 열풍에 남용되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Androgenic-anabolic Steroids)를 장기간 사용하면 시간 공간적 뇌기능 영역이 크게 손상되어 치매 환자와 유사한 증상이 유발된다. 어깨깡패를 만들기 위해 무분별한 아령운동도 관절손상을 유발시킨다. 무리하게 근육을 키우기보다는 젊었을 때 만큼의 근육을 유지할 때 뇌가 건강해진다.
혈관과 치매_뇌세포의 생명줄, 혈관을 관리하라
뇌세포에 영양과 산소를 공급하는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면 뇌 조직 손상으로 이어지면서 ‘혈관성 치매’가 발생할 수 있다. 알츠하이머 치매는 장기간에 걸쳐 천천히 진행되는 반면 혈관성 치매는 단 한차례의 뇌혈관 손상만으로도 편마비, 구음장애, 연하곤란, 시야장애 등의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 그래서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심장병, 흡연 등 혈관을 나쁘게 하는 질병을 치료해야한다. 최근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 발표에 의하면 20대 5명 중 1명이 이상 지질혈증으로 나타나 혈관 건강에 비상등이 켜졌다. 젊을 때부터 건강한 식습관과 운동이 심혈관 질환은 물론 치매까지 관리할 수 있다.
치아와 치매_잇몸이 보내는 치매신호
‘설마 이 안 닦는다고 치매에 걸릴까?’ 걸린다. 치주질환을 제때 치료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다. 음식을 씹는 저작활동 자체가 뇌의 섬유아세포 성장촉진인자(fibroblast growth factor) 분비를 촉진해 식욕을 조절하고 뇌세포 회복과 학습, 기억 형성을 촉진한다. 따라서 치아 수가 감소되어 씹기가 힘들어 뇌로 가는 혈류량이 줄어들면, 뇌 대사 활동의 감소, 전신적인 영양불량을 유발해 인지기능 저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치주질환을 일으키는 구강세균도 치매를 유발한다. 10명의 알츠하이머병 환자 뇌 조직을 검사했을 때 4명에서 치주질환원균인 P. gingivalis에서 유래한 LPS라는 물질을 확인했고 이것은 치주질환원균이 뇌에 침입하여 지속적으로 감염시켜 점진적 치매, 뇌 위축, 아밀로이드 침착을 유발할 수 있다. 치아 상실은 단순히 강기능의 저하뿐만 아니라, 전신적인 건강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구강관리가 치매 예방의 시작이다.
청력과 치매_들리지 않으면 세상에서 멀어 진다
‘노인성 난청’은 달팽이관을 비롯해 청신경의 세포 수가 감소하면서 발생한다. 하지만 안 들린다는 것은 단지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타인과 대화하는데 어려움을 겪다보니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이 생길 수 있다. 난청이 심해지면 소리가 들리지 않아 뇌에 언어 자극이 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신경이 퇴화하게 되어 인지력이 떨어진다. 이것이 바로 난청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이유다.
수면과 치매_잠이 보약이다
불면증은 치매 발병률을 50%까지 높인다. 뇌에 쌓이는 '베타-아밀로이드'가 원인이다. 깨어있는 동안 뇌는 활동하면서 베타-아밀로이드를 발생시키는데, 우리 몸은 잠을 자는 동안 이를 몸 밖으로 배출시킨다. 그러나 잠을 깊게 자지 못하면 뇌에 베타-아밀로이드가 축적돼 알츠하이머 치매 같은 퇴행성 질환 발병 위험을 높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9년 불면증(수면장애)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2015년 대비 28.4% 증가했다. 50세 이상 중·장년층이 가장 많다.
잠을 잘 자려면 잘 깨야 한다. 몇 시에 잠들었는지 상관없이 매일 일정한 시간에 기상하는 습관을 들인다. 밤 10시~새벽 2시 사이에는 멜라토닌이 활발하게 분비되므로 이 시간에는 최대한 깊은 잠을 자는 게 좋다. 낮에 햇볕을 쬐고 운동하는 것도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해 숙면에 도움을 준다.
뇌 건강에 좋은 음식_직접 요리한 오메가3를 먹어라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 WHO는 '지중해 식단'이라 부르는 고기는 적고 채소와 요구르트, 올리브가 많은 음식을 먹으라고 권고한다. 특히 고등어, 참치, 연어 같은 생선류와 호두, 들기름 등 오메가3지방산이 많은 식품을 섭취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오메가3’는 뇌 세포막과 뇌 신경계를 구성하는 주요 성분일 뿐 아니라 베타아밀로이드가 뇌에 쌓이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설거지, 요리, 청소 같은 집안일을 매일 하는 것도 치매예방에 효과적이다. 그래서 오메가3가 든 알약을 먹는 것보다 들기름 막국수를 직접 해먹는 것이 뇌 건강에 좋다.
들기름 막국수
준비물: 들깨가루, 들기름, 삶은 계란, 메밀국수100g, 천일염, 국간장, 사골육수, 김가루
① 메밀국수를 삶아서 찬물에 헹군다.
② 물기를 뺀 메밀국수에 천일염, 국간장으로 간을 하고 들깨가루를 넣고 조물조물 묻힌다.
③ 국수를 그릇에 담고 고명으로 반 자른 삶은 계란, 김가루, 들기름을 올린다.
④ 먹기 전에 국수가 약간 잠길 정도로 사골육수를 붓는다.
뇌 건강에 좋은 운동_오늘 한 운동, 25년 후 치매를 막는다
중년에 신체 활동을 많이 할수록 노년기 뇌 건강이 좋아진다. 영국 알츠하이머 연구소는 중년기에 1주일에 150분이상 운동한 그룹을 장기간 추적한 결과 운동량이 적거나 없는 그룹보다 뇌혈관이 건강하고, 치매 등 뇌 질환을 나타내는 지표도 더 적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일주일에 3일 50분씩 빠른 걸음으로 걷기만 해도 체력뿐만 아니라 정신력이 개선된다. 운동을 하고 몸을 움직이는 것은 신경 성장인자 분비를 촉진해 스트레스를 예방하고 뇌에 혈액과 산소, 영양분의 공급을 원활하게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