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의 여유김여환 | 가정의학과 전문의(푸른청신경과 원장)

창가의 여유

당신이 잠든 사이,
몸은 만들어진다.

2007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야간근무’를 2A급 발암물질로 정했다. 납 화합물, DDT 살충제, 디젤엔진 배출물 등의 고약한 화합물과 같은 등급이다. 바꾸어 말하면 수면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달콤한 잠을 자는 동안 몸은 스스로 치유하고 성장한다. 낮 동안은 나도 모르게 거북이처럼 목을 앞으로 쑥 빼며 일했지만, 잠자는 동안만큼은 자연스러운 중립자세를 찾아야 한다. 우리는 한평생 3분의 1이라는 긴 시간을 잠자는 데 사용하므로, 좋은 수면자세가 땀 흘려 운동을 하는 것만큼이나 근골격계 건강에 중요하다

의료계는 앓고 있는 질병에 따라 수면자세를 알려준다.

역류성 식도염 환자는 왼쪽으로 누워 자면 좋다. 내부 장기가 일렬로 되면 역류하는 산의 양이 줄어서 속 쓰림이 완화된다. 위산이 역류되지 않게 베개도 높은 것을 추천한다. 고혈압환자는 심장에 여유 공간을 만들어주는 오른쪽이 좋다. 하지만 임산부는 이 자세가 별로 좋지 않다. 특히 임신 말기에는 태아로 가는 혈류에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장을 보고 똑바로 누워 자면 얼굴의 주름과 반점이 덜 생겨 피부에 좋다. 하지만 옆으로 자는 사람보다 코골이와 수면 무호흡증이 걸릴 위험이 2배나 높다. 코골이 때문에 수면무호흡증에 시달리면 옆으로 누워서 자는 것을 추천하다. 그러나 질병이란 근본 치료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치료는 하지 않고 편향된 수면자세로 증상조절에만 매달리면 궁극적으로는 근골격계 질환 하나를 더 얻는다. 잘못된 수면자세는 몸을 서서히 망가뜨린다. 몇십 년에 걸쳐 몸의 정렬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누구도 수면자세가 범인이라고는 눈치채지 못한다. 더군다나 수면자세라고 해봤자 머리를 똑바로 또는 옆으로 한다든지, 손바닥을 위로 또는 아래로 하다든지 등의 사소한 동작이기 때문에 설마 이것 때문에 몸이 아플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혈압, 고지혈증, 고혈당 등의 중요한 내과 질환이 생활 습관병인 것처럼 근골격계 질환 역시 생활 습관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요즘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자고 있을까? 한 병원에서 최근 1개월간 성인남녀 142명을 대상으로 ‘평소 수면자세’를 조사한 결과, 24%(34명)만이 ‘차렷’형 자세로 잠을 잔다고 응답했다. ‘옆으로 누워 잔다’ 21%(30명), ‘엎치락뒤치락’ 19%(27명), ‘(태아처럼 웅크린)새우잠’ 18%(25명), ‘옆으로 누워 하반신만 비틀어진 자세’ 12%(17명), ‘엎드린 자세’6%(9명) 순이었다. 결국 ‘차렷’형 자세로 잠을 자는 성인은 10명 중 2명에 불과했다.

척추 정렬이 올바른 사람은 똑바로 누운 자세에서 특별한 불편함을 느끼지 않지만, 퇴행성척추질환자나 요통환자는 똑바로 자면 통증이 있다. 척추관협착증이나 허리디스크가 있는 사람도 똑바로 누우면 척추관이 좁아지고 하반신 신경을 압박해 다리가 저릴 수 있다. 옆으로 누워 자면 척추관이 넓어지면서 일단 통증은 준다. 반대로 척추전만이 있으면 엎드려 다리를 구부린 채 자면 편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우리가 느끼는 편한 자세라는 것도 통증을 감소시키는 자세이지 반드시 바른 수면자세는 아니라는 것이다.

근골격계 질환에 도움이 되는 바른 수면자세는 ‘차렷’형 자세와 비슷한 ‘해부학적인 자세’이다. ‘해부학적인 자세(anatomical position)’라는 생소한 말은 의학공부를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장 처음 배우는 용어이다. 그만큼 기본자세이며 모든 의학적 기술의 기준점이 되는 중립자세이다. 발, 손바닥을 앞쪽으로 향하여 똑바로 선 자세로서, 공식 해부학적 명명법으로 정해진 각종 구조 또는 부위, 혹은 방향을 기술하는데 참조하는 자세로 사용된다.

‘해부학적 자세’는 모든 관절이 펴진 상태로 근육은 이완과 수축이 없는 편안한 상태다. ‘차렷’ 자세와 다른 점은 손바닥이 몸통 옆이 아니라 앞을 보고 있다는 점이다. 손바닥이 앞으로 향하면 팔꿈치 아래 있는 두 개의 뼈가 꼬임이 없어지고 날개뼈 안쪽 근육도 긴장이 풀린다. 자연스럽게 가슴이 펴져 어깨가 앞으로 말리지 않는다.

육중한 우리 몸이 중력을 이기고 걸어 다니기 위해서 신체는 체중을 고르게 분산되는 구조로 되어야한다. 그것이 바로 척추의 S라인이다. ‘S라인’이란 목과 허리뼈가 C자형을 이루고 가운데 있는 흉추가 역 C자를 만들어 내는 긴 S자를 말한다. 25개의 척추뼈가 만든 S라인은 마치 큰 스프링처럼 충격을 흡수해 걷거나 움직일 때 체중을 골고루 분산시킨다. 이러한 척추 만곡이 없다면 체중이 고스란히 뼈로 전달되고 근골격계의 퇴행성 변화를 지금보다 훨씬 빨리 겪게 될 것이다. 바른 수면자세를 강조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이런 척추 만곡이 수면 중에 파괴되는 것을 최대한 막자는 것이다.

그래서 목 베개가 필요하다. 척추 중 가장 힘없고 가냘픈 목이 자면서도 C자 정렬을 유지하려면 뒤에서 받쳐주는 구조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없다고 당장 목이 내려앉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목 주위의 근육과 뼈의 정렬은 변하게 된다.

헬스트레이너 김 관장은 베개가 몇 개인지 모른다. 몇 해 전 베트남 여행에서 사온 라텍스 베개부터 친구가 추천한 호주에서 직수입한 경추베개, 유명한 정형외과의사가 디자인했다는 고가의 베개까지 베개만 해도 이불장 한 가득이다. 또 베개를 만드는 소재 또한 고급스럽다. 솜이나 메밀보다는 라텍스, 메모리폼, 폴리우레탄, 편백나무 조각 같은 것을 사용한다. 모두가 김 관장만큼은 아니라도 베개 한 개로 몇 년을 버틴 옛날과 달리 요즘은 베개 두세 개는 보통이다. 그만큼 베개에 대한 관심도 많고 베개시장도 활성화되어있다.

고침단명(高枕短命)이라는 옛말만 믿고 아예 베개 없이 자는 사람도 있다. 자는 동안 목을 받쳐주지 않으면 멀쩡했던 C자형 목이 수년에 걸쳐 일자가 된다. 일자 목이란 엑스선 촬영에서는 뼈가 단순히 일직선 배열을 한 것으로만 보이지만, 목 주변의 근육이나 인대가 비정상적으로 짧아지거나 늘어졌다는 것도 알아채야 한다. 목은 좁은 공간에 머리, 얼굴 그리고 팔로 가는 혈관과 신경이 촘촘히 밀집해 있다. 머리와 몸통을 연결시켜주는 목을 고속도로로 비교해보자. 8차선 고속도로쯤은 돼야 신경과 혈관이 무리 없이 지나다닌다고 가정하면 목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수축과 경직이 되어 2차선으로 변해 버리면 목을 지나는 수많은 혈관과 신경이 딱딱해진 근육 사이에 끼이게 된다. 이런 현상은 불필요한 두통, 안구통, 어깨 결림, 팔 저림 등의 비전형적인 증상에 시달리게 한다.

목이 C자가 아니면 목을 둘러싼 근육의 균형이 무너져 있고 신경이 활성화되어 잠자는 사이에도 근육이 계속 일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잘 다치는 근육은 날개뼈와 경추를 연결하는 견갑거근과 목빗근, 승모근 등이다. 목과 어깨근육은 연결되어 있어서 병도 항상 친구처럼 따라 다닌다. 그래서 목이 아픈 사람이 나중에 어깨도 나빠져 있다.

베개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과 반대로 높은 베개가 편하다고 자꾸 베개를 높이게 되면 목은 일자목보다 더 위험한 역 C자가 된다. 역 C자는 목 디스크로 발전할 수 있다. 베개와 목 건강, 수면건강에 대한 논문도 많이 나오고 있지만, 어떤 베개를 선택해야 하는지는 의사도 잘 모른다. 확실한 것은 베개란 모름지기 머리가 아닌 목을 잘 받쳐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목이 앞으로 빠지지는 않았지만 일자목이다. 현미 채식으로 유명한 대체의학을 하시는 분이 알려준 ‘베개 없는 수면’을 13년 했다. 그래서 지금은 자는 동안 목이 C자를 이루도록 긴 원통모양의 베개로 목을 괸다. 뒤통수의 볼록한 정도에 따라서 개인차는 있지만 목 베개의 높이는 5~6cm면 적당하다. 옆으로 누울 때는 똑바로 때보다 조금 높게 7~8cm다. 이 높이가 척추가 옆에서 봐서 일직선을 이루게 할 것이다. 경추베개가 없으면 수건 두 장을 탄탄하게 돌돌 말아 고정시켜서 사용한다. 자다보면 푹 꺼지는 경추베개보다는 직접 만든 수건 목 베개가 훨씬 낫다. 그러나 일자나 역 C자 목이 아주 심한 사람이 바로 경추베개로 바꾸는 것은 위험하다. 목 근육치료를 충분히 한 뒤 차츰 베개를 바꾸어야한다.

목을 받쳐주었으면 다음은 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등이 위로 보이게 두 손을 살포시 모으고 배 위에 올려놓고 잔다. 손바닥을 위로하는 것과 손등을 위로하는 것이 동전의 앞과 뒤처럼 비슷한 의미가 아니다. 손은 날개뼈를 통해서 목뼈로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손을 어떤 모양으로 하느냐에 따라서 어깨와 목이 긴장하는 정도는 달라진다. 목이 앞으로 빠지고 어깨가 말린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부처님처럼 손바닥을 앞으로 보이는 자세만 해도 많이 좋아진다. 팔짱끼는 자세나 손을 배 위에 모으고 자는 자세는 어깨를 앞으로 점점 더 굽게 만든다.

적당한 높이의 목베개를 하고 두 팔을 손바닥을 위로해서 몸통 옆에 가지런히 두면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펴지고 어깨가 제자리를 찾는다. 스쿼트나 벤치프레스만이 근육을 멋지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근육은 섬세하고 정확한 동작으로 잘 쉬게만 해줘도 스스로 멋지게 회복할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새우처럼 웅크려 자야 잠이 든다. 마치 어머니 뱃속에 있는 것처럼 아늑하고 일시적으로 허리통증도 덜하다. 그러나 그렇게만 자면 요통은 악순환이 된다. 어쩔 수 없이 밤새도록 새우잠을 잔 날에는 밤새 구겨져 있던 ‘장요근’을 꼭 늘려줘야 한다. 장요근은 뱃속 안에서 허리에서 대퇴부를 연결하는 길고 큰 근육이다. 한참동안 쪼그리고 앉았다가 갑자기 일어설 때 허리가 잘 안 펴지는 것도 이 근육이 수축과 이완을 빨리 하지 못해서이다.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다가 잠잘 때조차 허리를 꼬부리고 새우잠을 자면 장요근은 주구장창 수축만 한다.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새우 잠자는 사람은 장요근 스트레칭은 꼭 해줘야 한다. 한쪽 다리를 앞으로 세우고 반대편 다리를 뒤로 죽 편다. 한손은 구부린 무릎 위에 다른 한 손은 바닥을 짚는다. 뒤로 뺀 다리의 골반이 늘어나도록 앞으로 지긋이 스트레칭한다.

오래 사는 세상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아프면서 오래 사는 세상이다. 재밌게 살다가 마지막에는 온 뼈마디가 징그럽게 아파서 요양원에만 틀어박혀 살아가야 한다면 누가 행복한 인생이라고 하겠는가? 끝이 좋아야 좋은 법이다. 그래서 나는 ‘성공한 노화란 근육을 100세까지 88하게 쓰는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통증 없이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서는 근육운동, 단백질공급과 더불어 무심했던 수면자세도 꼼꼼하게 점검해야한다. 몸은 당신이 잠드는 동안에도 아주 천천히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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