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한 준 | 한국삶의질학 회장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조건
김상용 시인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왜 사냐건… 웃지요”
많은 사람이 왜 사느냐는 질문의 답으로 행복을 얘기할 것 같습니다. ‘행복’이라는 키워드로 책을 검색하니 111,194건이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그만큼 우리가 ‘행복’이라는 단어를 많이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의 삶은 소설 『파랑새』에서 틸틸과 미틸이 파랑새를 떠나는 여정처럼, 늘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행복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만 행복한지 잘 알지 못합니다. 국어사전에서 ‘행복’을 찾아보니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라 나옵니다.
추상적인 개념이라 여전히 손에 잡힐 듯 말 듯 합니다. 이런 행복도 통계치로 나타낼 수 있을까요. 만약 이런 행복을 측정할 수 있고 숫자로 나타낼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을 관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연세대학교 한준 교수는 우리나라 삶의 질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얼마나 행복할까요.
삶의 질이라는 말과 행복이라는 말을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는지요
행복은 주관적인 웰빙의 측면이 많고 삶의 질은 주관적 웰빙에 객관적 조건을 같이 본다고 생각하시면 될듯합니다.
삶의 질은 국민들이 삶의 여러 영역이나 분야에서 얼마나 만족한 삶을 사는가를 전반적으로 일컫는 말이고 그 측정은 주관적인 만족도와 삶의 여러 영역들에서의 객관적 조건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삶의 질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요
삶의 질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보고 있는데요. 먼저 역량 있는 개인입니다. 교육을 통해 지식과 일할 능력을 갖추고 있고 경제적 여유와 복지 혜택을 누리며,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개인입니다.
두 번째는 사회적 관계입니다. 사회통합과 결속이 이루어지고 시민참여가 활발하고 여가활용을 통해 문화생활을 즐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위험으로부터 자유롭고 환경이 보호되고 지속 가능한 삶을 보장하는 환경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삶의 질 지표는 가족·공동체, 건강, 교육, 고용·임금, 소득·소비·자산, 여가, 주거, 환경, 안전, 시민참여·주관적 웰빙 등 11개 분야에 대해 객관적 지표 57종, 주관적 지표 24종으로 구성되어 측정하고 있습니다.
직설적으로 질문을 해봅니다. 우리 사회는 행복한가요
한국인의 삶의 질은 매우 낮은 수준은 아니지만 소득 3만 불로 20위권에 있는 경제수준에 비하면 50위권으로 상대적으로 낮다고 할 수 있습니다. OECD 30여 개국에서는 29위 정도 됩니다.
경제 수준에 비해 삶의 질은 낮은 편이지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삶의 질이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는 세계적으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경제 성장을 이룩하고 민주화를 달성했습니다. 그런데 국민들의 행복은 그에 비례해서 높아지지 않았던 거죠.
지금 우리 사회는 낮은 출산율, 급속한 고령화, 높은 자살률, 사회적 갈등, 빈부 격차 심화 등 다양한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굶어 죽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불행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더 많은 거죠.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제 성장에 앞서 국민이 행복한 삶을 살도록 정책을 개발하고 추진해야 합니다.
요즘 한번뿐인 인생을 후회 없이 즐기자는 ‘욜로’,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소확행’, 일과 삶의 균형을 찾는다는 ‘워라밸’ 등 다양한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들이 나오는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요.
개인적으로 그런 개념을 결핍된 행복이라고 봅니다. 사회 구조적 결핍에 따라 그러한 말들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행복이란 자신이 체감할 수 있는 삶의 만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권위적이고, 성장 위주의 사회 환경에서 개인이 희생하는 그런 분위기가 많았습니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이제 사람들이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는 단계에 올라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당연하게 여기던 불합리한 것에 대해 이제는 비판적 인식을 가지는 것입니다.
행복한 사회로 나가기 위해서는 사회 어떤 부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시는 건지요
우리 사회의 행복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에 대해서는 사회적 기초가 약하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우리 사회는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경쟁하고 비교하며 자신을 검증받아야 하는 면이 많습니다. 그리고 어려울 때 도움을 받기 어렵고 혼자 헤쳐가야 한다는 불안감도 많죠. 거기에 가치관은 물질적이고 외면에 치중하는 측면이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행복도를 낮춥니다. 따라서 행복한 인간이 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이제 지식 위주의 공부보다는 인간 위주의 교육이 되어야합니다. 대학이 인생을 좌우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됩니다. 공부가 좋은 사람은 공부하고 아무리 공부해도 성적이 안 나오는 학생에게는 자신이 좋아하는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합니다. 소득이 적더라도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다른 사람과 비교할 이유가 없어요.
BTS나 이강인 축구선수를 보면 어릴 적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잖아요. 특별한 경우라고 할 수 있지만 이제 과거와 같은 성공 방식이 달라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앞에서 말씀하신 사회적 기초가 약하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지요
사회적 환경에서 우리 국민들이 느끼는 불행의 요소를 살펴보면, 우선 우리 국민들은 부정부패에 대한 인식이 높고 사회의 공정성 부분에도 불만이 많습니다. 제도에 대한 불신도 높고요. 그리고 상대방의 눈치를 보고 사는 경향이 높아요. 자기 하고픈 대로 못하고 눈치를 보니 불행할 수 밖에 없죠.
삶의 질이 가장 높은 나라는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입니다. 이들의 삶의 질이 높은 이유는 높은 복지 수준과 국민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여건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즐기는 건강한 개인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건강한 개인주의자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인터넷에 악플을 많이 다는 편입니다. 남의 일에 관심이 많고 남의 약점이나 잘못된 점을 잡아내서 비판하기를 즐깁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 상처를 많이 받는 편입니다. 그리고 사회의 불합리한 부분에 대해서 고쳐나가고 상호 간의 신뢰도를 쌓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생애주기에서(예: 유아기, 청소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 가장 행복한 시기와 불행한 시기는 언제 이고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지요
가장 행복한 시기는 일반적으로 청년기라고 합니다만 한국에서는 청년들도 그다지 행복하지는 못해 보입니다. 한편 서구에서는 가족 부양과 자녀 양육의 부담이 큰 중년기가 가장 행복도가 낮고 은퇴 후 높아진다고 하는데, 한국은 반대로 은퇴 후 외로움과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노년기의 삶의 질이 가장 낮습니다.
삶의 질 측면에서 우리나라가 계속 좋아지는 지표와 계속 나빠지는 지표가 있나요
평균 수명은 계속 좋아지고 있지만 반면에 주관적 건강은 계속 나빠지고 있습니다. 학생들 성적은 좋아지는 편이지만 교육 만족도는 계속 나쁘고요. 우리나라는 가족을 중요시 여기고 있지만 가족·공동체 부분의 지표는 계속 나빠지는 부분 중에 하나입니다.
4차산업 시대를 앞두고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미래를 많이 예견하고 있습니다. 사회 많은 영역에서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미래가 온다면 우리는 행복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자동화 비율이 높은 나라입니다. 하이패스 사용률도 높고 무인 주문 시스템 도입도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일본은 자동화가 높을 거라 생각하지만 노인같이 신체가 불편한 사람을 도와주는 방향으로 자동화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적당한 일은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해줍니다. 사람들이 더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측면에서 사회적인 고민이 많이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삶의 질 지표가 조금 바뀐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바뀌게 되는지요.
그동안 사회지표와 삶의 질 지표에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사회지표는 80년대 만들어 졌고 삶의 질 지표는 2010년에 만들어 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두 지표에서 차이가 발생했습니다. 사회지표가 삶의 질을 포함하고 있어야 됩니다. 이런 두 지표의 통합 작업을 지금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지표는 아직 생산자 위주로 구성된 면이 많긴 합니다. 이제 통계는 이용자 측면에서 잘 활용할 수 있는 구조로 바뀌어 가야 합니다. 개인마다 자기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다릅니다. 자신의 기준으로 다시 삶의 질 지표를 조정해 보는 기능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건강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면 건강에 좀 더 가중치가 부여된 삶의 질 지표를 재생산해 볼 수 있는 것이지요. 또 자신이 삶의 질 수준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볼 수 있는 기능도 필요합니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날 것이지만, 현재 이 정도면 행복한 것 같은데 삶의 질 지표는 우리 사회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뭔가 우리 현실하고는 맞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그런 질문을 받으실 것 같기도 한데요
삶의 질 지표는 국제적 기준으로 객관적으로 측정한 결과입니다. 좋다 나쁘다로 안심하거나 실망하기보다는 지표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표는 사전적 의미로 방향이나 목적, 기준 따위를 나타내는 표지입니다. 우리나라는 짧은 시간 동안 큰 변화를 겪다 보니 이에 따른 부작용이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것이 맞느냐 아니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우리사회가 어떻게 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읽어야 합니다. 지표 결과가 안 좋게 나오니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은 사회가 발전해 나가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삶의 질에 대해서 연구하시는 교수님 개인적인 입장에서 행복의 기준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행복해지는 비법이랄까요. 그런 것이 있을까요.
행복은 주관적인 면이 많습니다. 이거다하고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지만 사회 전체적 시각에서 보면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조건들이 있습니다.
경제적 조건이나 공동체적 관계 그리고 안전한 환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 위에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대해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이 이룰 수 있는 삶의 목표를 정해서 달성하려고 노력한다면 행복이 높아질 것이라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