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의여유김여환 | 의학박사

사주, 잘 알면서도 가장 모르는
자신에 대한 성찰

대한민국에서 ‘사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엄마도 그랬다. 엄마는 뭘 보러 많이 다녔다. 연달아 세 딸을 출산한 여인의 애끊는 마음을 위로받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러나 덕분에 나는 망했다. 역술가들은 한결같이 내가 결혼하면 재산을 시댁으로 들고 가서 친정을 몰락시킨다고 했다.

나는 남동생이 태어나면서부터 공부 잘하는 착한 딸에서 집안 말아먹는 척덕꾸러기 경계대상이 됐다. 뒤늦게 사주라는 것을 공부해보니, 내 사주를 일반적으로 해석하면 딱 그랬다. 어리석게도 엄마는 딸로부터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역술가들이 말해주는 사주대로 살다가 떠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엄마의 재산은 내 이름 석 자를 올린 작은 부동산만 남았고, 나머지는 몽땅 사기당했다. 지금 나에게 엄마와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주저 없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딸아이가 부모의 재산을 입고시키는 기운이 있으므로 맡기면 지킬 수 있습니다.” 명리 용어로 입고(入庫)시킨다는 것은 창고에 묻어 둔다는 뜻이고, 적당한 운이 오면 창고 방출, 즉 開庫)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시대가 변했으니 명리학도 변해야 한다.

사주팔자란 무엇인가

사주(四柱)는 4개의 기둥이다. 기둥은 하늘과 땅으로 된 2층짜리 건물이다. 4개의 기둥을 합치면 여덟 글자이고, 이것이 “아이고, 내 팔자야.”라는 사주팔자(四柱八字)이다. 문제는 사주팔자라는 것이 생년월시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태어난 년, 월, 일, 시에서 하늘과 땅의 글자를 받아 2층짜리 네 기둥이 되고, 이 여덟 글자가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사실은 현대인으로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출발이다. 그렇다면 명리는 통계일까?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을 관찰해보니 이런 사주가 있는 사람이 이런 운명인 경우가 많다고 하지만, 운명은 통계학적으로 유의성을 확보하기에 복잡한 변수가 너무 많다. 그럼에도 의사인 나는 명리학을 한다.

〈사주의 정석〉을 집필한 검사는 사법고시의 당락이 인연이 되어 사주 공부를 했고, 나는 죽어가는 환자를 돌보는 바람에 명리 공부를 했다. 물론 한의사인 남편과 딸도 적당한 자극이 됐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인정한 한의학의 ‘경혈’이 양방치료의 ‘근골격계 통증유발점(tig ger point)’과 80%가 일치한다는 점도 막연한 희망이었다. 한국인이 힘들어지면 무심코 내뱉는 ‘사주팔자’가 먼 훗날 ‘사람의 운명 지도’라는 것이 나온다면 80%가 일치할 수도 있지 않은가.

이런 논란과 상관없이 사주팔자는 1460년, 세조 6년 경국대전에서부터 인생의 실타래를 아름답고 당당하게 때로는 음흉하고도 매섭게 해석해 왔다. 하늘의 기운을 뜻하는 10개 글자와 땅의 기운을 뜻하는 12개 글자가 화려하고 역동적으로 그려내는 ‘운명의 이치’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생년월일시에 출발하는 문제점이라든지, 통계학적 근거 유무에 대한 의심은 사라질 것이다.

명리학은 22개 글자에 담긴 원칙

명리학은 에너지학이다.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라는 의미심장한 기운을 품은 하늘과 땅의 글자, 22개에 사람의 운명을 담았다. 만세력 애플리케이션에 생년월일시를 입력하면 사주팔자가 나온다. 연월일시(年月日時)에 해당하는 2층짜리 4기둥 중 일(日)에 해당하는 기둥이 나를 뜻하고, 그 기둥의 하늘 글자가 사주의 여덟 글자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 그림에서 홍길동 씨는 연월일시 기둥이 왼쪽부터 시작하므로 병(丙)이 본인 글자다.
내 경우는 자신을 나타내는 기둥이 ‘계해(癸亥)’다. 계해는 하늘과 땅의 글자 중 가장 마지막이다. 어떤 역술가는 여자가 계해로 태어나면 의부증이 심해 남편에게 잔소리가 심하고, 중년에 야반도주한다고 황당한 소리를 한다. 그래도 내가 가진 계(癸)라는 글자는 그나마 낫다. 만약 여자가 자신을 나타내는 기둥에 ‘임(壬)’이라는 글자를 가지고 태어나면 고집 세다고 조선 왕실에서는 절대로 왕비로 책봉하지 않았다. 옛날식 명리는 남존여비의 극치다. 아직도 역술가의 말에는 그런 잔재가 남아있다.
22개 글자 사이에는 원칙이 있다. 생극제화, 형충회합, 십이신살 등의 어려운 역학 용어가 그것이다. 하늘과 땅의 글자 사이는 ‘십이운성’이라는 원칙을 쓰는데 하늘의 이상과 땅의 현실쯤으로 해석하면 알맞다. 역학자, 호신 선생님은 12운성의 새로운 해석이 현대 명리로 가는 비밀 열쇠라고 한다.

 
12운성은 나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을 생명 에너지로 비유한다. 잉태되어 태어나고 그 뜻을 펼치고 병들어 쇠약해 죽어서 묘지에 들어가는 12단계를 마치 인간의 생로병사를 빗대어 표현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순서다. 생명이란 누구를 막론하고 생로병사가 시간의 순서대로 흘러가지만, 12운성은 순서와 상관없이 나타난다. 나처럼 청년기에 하늘의 글자가 땅의 글자에 입묘(入墓)될 수도 있고, 노년기에 하늘의 글자가 땅의 글자에 태어나는 생(生)의 관계가 될 수도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12운성에서 입묘라는 것은 밖으로 드러남이 적다는 것이지 실제로 죽는 것은 아니다. 생명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죽음이고 무덤인데, 그런 입묘의 청년기를 겪은 나는 아직 건강하다. 결혼하고 13년을 전업주부로 살다가 다시 호스피스 의사가 된 사건을 명리는 ‘묘’라는 단 한마디의 단어로 표현했다. 13년이라는 자기 성찰의 시간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나는 없었다. 인간은 실제로 작업을 하는 동안이 아니라, 계획하고 기다리는 동안 가장 많은 일을 하기 때문이다.

운명을 계발하라

‘명리학은 맞아야 한다.’라는 예측론에서 벗어나야 한다. 명리학의 존재감은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일은 아니다. 내가 그동안 어떠한 패턴으로 인생을 살아왔고 불행한 패턴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조상의 지혜를 통해 알아보는 것이다. 정말로 현명한 사람은 사주를 볼 필요가 없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살아온 생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미래가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란 자신을 제일 잘 알면서도 제일 모른다. 명리에서 보는 운명과 내가 보는 운명을 비교해보면 끝이 보이지 않던 인생의 실타래가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 그렇다고 절대로 돈 몇 푼 쥐어 주고 어두컴컴한 뒷방 구석에서 나의 미래를 들여다보지 말라. 엄마처럼 낭패 볼 수 있다.

사주팔자란 자기 글자와 나머지 일곱 글자와의 관계다. 그러나 땅의 글자 속에는 2~3개의 하늘 글자가 숨어져 있고, 10년마다 대운이라는 두 글자가, 1년마다 세운이라는 두 글자가 들어온다. 2018년은 무술(戊戌)이라는 세운이 사주에 들어왔다. 결국 우리는 여덟 글자뿐만 아니라 한평생 22글자의 모든 에너지를 경험한다. 다만 어떤 기운을 담은 글자를 즐겨 쓰냐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있다. 나만이 빛낼 수 있는 운명의 에너지를 평생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하고 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글자 속의 글자까지 알뜰살뜰 다 사용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같은 사주라도 다른 운명이 된다.

명리의 하이라이트는 운명을 바꾸는 일이다. 이제는 경면주사로 쓴 붉은 부적을 사서 베게 밑에 깔고 자는 케케묵은 방법이 통하지 않는 시대다. 삶의 진도가 나가지 않는 사람이 죽음 또한 앞으로 나갈 수 없듯이 ‘개운(開運)’이란 사주팔자 중에서 가장 반짝이는 글자를 찾아 서둘러 개발하는 일이다.

(35220) 대전광역시 서구 한밭대로 713(월평동) 통계센터 통계교육원 | E-mail : stimaster@korea.kr
Copyright(c)2014 Staticstis Training Institut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