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광장박성현 | 서울대 통계학과 명예교수, 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데이터 기반 4차산업혁명 시대…
의사결정체계에서의
통계의 역할

데이터가 이끄는 새로운 변화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이 혁명은 데이터와 소프트웨어 기반의 지능 디지털 변혁을 주는 혁명으로, 일자리와 일상생활의 패턴에 큰 영향을 주고 있으며, 기업과 국가의 발전에도 심대한 역할을 부과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근간에도 다량의 데이터를 소프트웨어와 연계하여 정보를 신속·정확하게 창출하고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최근 선진국을 중심으로 데이터 사이언스(data science)라는 학문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에 따라 모든 조직의 의사결정체계도 데이터 사이언스의 관점에서 선진화되고 있다. 의사결정체계에서 사용되는 데이터 사이언스 프로세스 흐름도를 살펴보면 <그림1>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현실로부터 원시 데이터(raw data)를 수집하고, 이를 데이터 베이스(DB) 등의 원리를 사용하여 데이터 프로세싱을 시켜 컴퓨터에 저장하고, 검색을 통해 불필요한 데이터를 제거하여 양질의 데이터를 만든다. 그런 다음 통계적인 방법으로 탐구 데이터 분석(exploratory data analysis)을 통해 모델링과 알고리즘 개발을 거쳐 필요한 정보를 창출한다. 이 정보를 소통하고 시각화(visualization)하여 보고서를 작성하고 의사결정(decision making)에 사용하는 것이다. 이 데이터 결과물은 현실에 반영되어 사회의 각종 활동에 사용된다.

따라서 의사결정체계에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 데이터 수집과 올바른 통계 분석의 역할은 막중하다. 이러한 데이터 사이언스에 입각한 프로세스 흐름을 잘 이용하는 정치, 산업, 사회, 그리고 모든 조직은 건전하게 발전할 수있는 것이다. 의사결정과정에서 데이터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거나, 수집된 데이터를 왜곡되게 해석하여 잘못된 통계나 정보를 만드는 경우, 이런 잘못된 정보에 근거하여 결정된 정책은 조직이나 사회 또는 국가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이런 경우를 통계의 오남용(誤濫用)이라고 흔히 부른다. 특히 국가의 중요 정책을 펼 때 통계의 오남용이 없도록 정치인들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제 빅데이터가 의사결정 체계에서 중요한 역할 수행

과거 산업혁명에서는 석탄과 철이 주요한 역할을 했지만 컴퓨터,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정보화 지식사회가 시작되었다. 이 시대에는 다양한 경로로 취합된 빅데이터에서 숨은 정보과 새로운 지식을 발굴하여 혁신을 도모하려는 노력이 확산되고 있다. 빅데이터는 국가의 운영에서도 중요한 자원이 되고, 또한 산업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발굴하고 소비자 행동과 시장 변동을 예측함으로써 기업의 획기적인 혁신을 가져오고 있다. 10년 전에 이미 시작된 빅데이터의 활용사례를 들어보자.

2008년 네덜란드에서 창업한 스파크드(Sparked)사는 수천 마리의 소에 센서를 부착해 소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했다. 이렇게 축적한 연간 약 200MB의 정보를 이용하여 축산업자가 소에 대한 움직임, 건강 등을 수시로 확인 가능하게 해주며, 기후 변화 등 외부 빅데이터와 결합하여 소의 사육 방식을 정밀화하여 더 많은 소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런 시스템 덕분에 스파크드는 소 한 마리당 세계 최고 수준의 우유 생산량을 기록할 수 있었다. 종래의 고객만족경영은 고객만족조사, 설문조사, 시장조사 등을 통하여 고객의 요구사항을 기업으로 피드백하거나, 애프터서비스(A/S)를 통하여 고객 클레임이나 불만사항을 해결하여 주는 소극적 차원의 고객만족을 위한 품질경영이 주로 였다. 이런 종류의 고객만족경영으로는 기존의 고객에 대한 서비스경영은 가능하나 잠재고객이나 개발이나 고객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 불만사항을 해결하기 어렵다. 새로운 차원의 고객만족경영은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잠재고객을 개발하거나 잠재적 불만사항을 미리 예측하여 이를 해소하여 줌으로써 기존고객을 충성고객으로 바꾸고, 더 나아가 신규고객을 창출하기도 한다.
어떤 신용카드사의 고객맞춤형 홍보 전략 사례를 살펴보자(2012년 12월 29일자 한국경제신문 보도). 2012년 3월 아이를 출산한 김씨는 한달 후에 평소에 받아 보지 못했던 상품 소개 전단지를 받았다. 지금까지 광고 전단지에는 의류부터 식료품까지 전 품목이 나와 있어 잘 보지 않았지만, 이번 전단지에는 김씨가 마음에 두고 있었던 아기와 유아용품으로만 채워져 있었다. 김씨는 평소 눈여겨보던 브랜드의 아이 외출복 할인 쿠폰을 전단지에서 오려 백화점에서 15% 싸게 구입했다. 김씨가 관심이 동하는 전단지를 받게 된 이유는 L카드 회사의 이른바 ‘빅데이터’ 분석의 결과다. 실제로 L카드는 고객 5만 3천여 명의 씀씀이를 분석해 김씨처럼 실제 아이 엄마를 찾는 데 공을 들였다. 나이가 25~37세이면서 임부복이나 튼살 크림 등을 구매하는 고객 가운데 산부인과나 산후조리원 결제 실적이 있는 회원을 별도로 구분해낸 것이다. 신용카드사들이 빅데이터 분석을 고객의 소비 패턴을 읽는 ‘독심술’로 평가하면서 빅데이터 분석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고객의 요구를 선제적으로 파악해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 매출 증가는 당연히 따라올 것이다.

국가통계의 신뢰성을 높여가는 길

데이터 기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모든 의사결정체계에서 통계의 역할은 더욱더 중요해지고 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가를 운영하는 데 가장 중요한 근간은 국가의 공식 통계다. 최근 소득주도성장과 관련된 가계동향조사 ‘통계 논란’으로 국가통계의 신뢰성이 부분적으로 훼손되고 있다는 여론이 있다. 이는 불행한 일로 국가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도 국가통계의 신뢰성은 제고되어야 한다. 그러면 지금의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어떻게 국가통계의 신뢰성을 높여나갈 수 있을까? 그 방법을 세 가지만 들어 보자.
첫째로, 국가통계의 작성과 해석에서 정치적 입김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통계청의 독립성이 강화되어야 하고, 통계청장의 임기가 보장되어야 한다. 통계청은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면서 통계전문가들에 의해 있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통계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장기 임기제를 실시하는 국가도 많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통계청장은 임기가 7년이다. 미국, 캐나다, 프랑스, 호주 등도 4년 이상의 임기를 보장한다.
두 번째로, 통계청의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 현재 통계청은 기획재정부 산하의 외청으로 차관급 청장이다. 이제 국가에서 필요한 통계는 재정, 경제만이 아니라 환경, 과학기술, 산업, 노동 등 매우 다양하다. 따라서 더 이상 기획재정부 외청으로 있지 말고 모든 부서를 총괄하는 총리실 산하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차관급에서 벗어나 장관급 기관으로 격상되어야 하고 국무회의에 통계청장을 참석하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이 주도하는 데이터 경제시대이며, 공공 데이터가 모든 국가의 주요 정책을 주도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국가의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공공기관이 작성하는 모든 공공데이터의 표준화와 개방이 필수적이며, 이를 통하여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산업 등의 발전을 가져와야 한다. 이를 위하여 통계청이 통계 생산뿐 아니라 통계의 관리와 이용에도 큰 역할을 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빅데이터 산업을 보면, 공공데이터가 제대로 개방되어 있지 않고 개인 정보보호법에 막혀 발전이 안 되고 있다. 모든 부서에서 만드는 공공데이터를 통계청이 수합하여, 공공데이터를 이용하려는 모든 고객에게 표준화된 질 좋은 데이터를 개방한다면, 데이터를 가공하고 정보화하는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고, 경제를 살리는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통계청에서 운영하는 ‘통계빅데이터센터’의 기능을 강화하여 일반국민을 위하여 공공데이터를 개방한다면 우리나라의 빅데이터 산업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하여 선진국형인 독립성과 전문성이 보장된 통계청 운영을 하고, 공공데이터의 표준화와 개방이 이루어지고, 또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빅데이터 산업을 육성하는 데 통계청이 앞장 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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